중고차 시장에도 대기업 브랜드가 필요하다

입력 2021-11-23 15:27   수정 2021-11-23 15:28

중고차 시장은 한 해 차량 251만5000대가 거래되는 약 22조원 규모다. 90만5000대 규모의 신차보다 1.32배나 큰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전체 거래의 절반 이상이 매매상을 통하지 않는 개인 간 거래라는 점이다. 기업을 통해 제품을 사고파는 것이 안전하고 편리할 텐데 직거래 시장이 활성화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믿고 거래할 만한 중고차 기업이 없다. 그간 많은 매매업체가 차량의 사고이력, 침수이력을 숨기고 주행거리도 속여 왔다. 허위매물을 올려 헛걸음을 하게 만들고, 제품에 문제가 생겨도 사후서비스를 잘 해주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컸다. 즉 매매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차별성이 없고, 수수료 때문에 가격만 높아지다 보니 개인 간 거래가 활발해진 것이다.

왜곡된 중고차 시장의 피해는 소비자 몫이다.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서 상담한 내역을 보면 스마트폰, 정수기, 점퍼재킷류 다음으로 중고차 관련 사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보통 중고차가 1000만원 이상의 고가 제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비자 피해가 가장 심한 시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유튜브에도 중고차 거래 시 사기를 당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영상이 넘쳐난다. 소비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정보 수집을 하는 비용까지 치르는 등 유무형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소비자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수준 높은 품질 관리 시스템과 서비스 시스템이 필요하다. 특히 차량의 사고이력, 현재 성능 등 차량의 상태는 그 차량을 직접 만든 완성차업체에서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차량 수리 역시 차량을 제조한 업체에서 직접 처리한다면 소비자로서는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규제 때문에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차단된 상태다. 동반성장위원회가 2013년 중고차매매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한 이후 대기업은 모두 퇴출됐다. 그러나 6년의 시간 동안 소비자의 선택권만 제한당했을 뿐 중고차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어떤 매매업체도 신뢰도 있는 기업,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중고차 시장에서도 기업의 브랜드를 믿고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휴대폰, 가구, TV 등 고가의 제품을 구입할 때 해당 기업의 브랜드를 확인하고 의심 없이 구매한다. 이 기업들은 소비자를 오랜 기간 만족시켜 왔기 때문에 시장에서 그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중고차를 거래할 때처럼 제품에 하자가 있지는 않을까, 사후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경우는 없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소비자 편익을 고려해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생계형적합업종’ 등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정책들은 소비자 피해를 늘리고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만 키워왔다.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대기업이 퇴출되자 오스람 등 해외 기업과 중국산 저가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한 LED 조명의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중고차 역시 수입차 업체만 시장 진입이 가능해 국내 대기업 및 국산차 소비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만 발생시킬 뿐 중소기업 보호에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파는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살아남는다는 시장의 법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길일 뿐 아니라 산업발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중고차 소비자들도 하루빨리 안전한 환경에서 좋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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