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호재가 있거나 규제가 덜한 지방 중소도시가 외지인의 투기 광풍에 휩싸였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로 수도권 일대 부동산 투자가 어려워지자 지방으로 외지인들이 몰려간 탓이다. 최근 한 달 동안 매매된 아파트 10채 중 8채가 외지인 거래인 지역까지 나왔다.
23일 부동산정보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지난 9월 전국에서 외지인이 아파트(분양권 포함)를 사들인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경남 거제로 조사됐다. 100건 이상 아파트가 거래된 시·군·구 기준으로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거제의 9월 아파트 거래 1853건 중 외지인 매수는 1430건으로 비중이 77.2%에 달했다. 전국 기준 외지인 매수 비중인 29.8%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거제는 수년간 이어진 조선업 침체 여파로 미분양 단지가 속출했다.
하지만 가덕도신공항, 남부내륙고속철도(서부경남KTX) 등 개발 호재가 터지면서 올 하반기부터 외지인 투자가 대거 유입됐다. 미분양 상태이던 고현동 e편한세상 거제유로아일랜드의 전용면적 84㎡ 분양권은 1억원이 넘는 웃돈(프리미엄)까지 붙었다.
충남 당진(64.9%), 계룡(55.0%), 아산(51.8%) 등도 외지인 비중이 높았다. 대전, 세종 등이 규제지역으로 묶이자 인근 지역으로 매수세가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강원 속초(52.0%), 원주(51.5%) 등은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저가 아파트가 외지인에게 많이 넘어갔다. 지난해 ‘7·10 대책’에서 발표된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규제에서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아파트는 제외됐다.
외지인 투자가 들어온 지방 중소도시는 아파트 가격이 단기 급등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이 떠나면 현지 실수요자가 높은 집값과 전셋값을 떠안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세가 많이 오르면 양도세 등 세금을 내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라며 “1억원 이하는 물론 4억~5억원대 지방 중소도시 아파트까지 투자 타깃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매기간·세제 등 유리…1억 이하 매물은 갭투자 타깃
공시가격 1억원 이하 매물이 많은 강원 원주시 단계동 ‘세경3차’는 전용 59㎡ 실거래가가 1억3000만원대까지 올랐다. 올초 9500만원에 거래된 주택형이다. 몇천만원만 있으면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로 매입이 가능해 외지인 투자자가 몰렸다.
고강도 규제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투자가 어려워지자 비규제지역이면서 개발 호재가 풍부한 지방 중소도시가 주목받고 있다. 비규제지역은 전매 기간, 청약 자격, 세제 등에서 유리하다.
우선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이 최대 6개월에 그친다. 투기과열지구인 서울 등 규제지역은 최대 10년간 전매가 제한된다. 또 청약통장 가입 후 12개월만 지나면 세대주·세대원 상관없이 1순위 청약이 가능하고 재당첨 제한도 없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양도세 등을 내고도 충분히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해 지방 아파트 여러 채를 사들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무주택자는 물론이고 다주택자까지 지방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외지인 투자가 지방 부동산 시장을 교란한다고 지적한다. 외지인들이 아파트를 ‘싹쓸이’한 곳은 가격이 단기간 급등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지방 실거주자들은 높은 주거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또 충북 청주 등에서는 외지인이 빠지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열린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외지인 투기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 엄중 조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외지인이 전국에서 사들인 저가 아파트 거래를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금 등을 제대로 내는 정상 거래까지 막을 순 없는 상황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여전히 유동성이 풍부하고 아파트만큼 좋은 투자처가 없다는 인식이 많다”며 “규제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틈새 투자처가 발굴되고 있다”고 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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