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좀비'에 이어 'K-저승사자'가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영화 '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연상호 감독의 신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원작은 연상호 감독이 대학 동기이자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함께 그린 동명의 웹툰이다. 총 6개의 에피소드는 2019년 9월 1일 연재를 시작한 '지옥' 시즌1부터 시즌2까지 내용을 3개씩 나눠 담아낸 것. 하나의 시리즈임에도 2개로 나뉜다고 느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옥행을 고지받는다는 독특한 설정에 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공개 24시간 만에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선정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렸고, CNN 등 외신에서는 "제2의 '오징어게임'"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지옥'의 흥행으로 연상호 감독은 대한민국 최고의 만화가이자 이야기꾼, 연출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연상호 감독은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으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았고, 영화 '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또한 tvN '방법'의 각본을 썼고, '지옥' 웹툰 작업을 하기도 했다.
다재다능한 크리에이터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연상호 감독이지만 스스로 "대중적인 취향의 사람은 아니다"고 평가하면서 "'지옥'이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게 얼떨떨하다"면서 겸손하게 세계 1위 등극 소감을 전했다.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1위 기록을 이뤘다.
어리둥절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1위가 됐다. 연락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엇, 이분도?'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제2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해외 평가도 나온다.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인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전부터 쌓아온 신뢰가 폭발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세계적 사랑을 폭발적으로 받는 건 10년도 전부터 한국 영화, 드라마가 세계 시장이라는 벽에 천천히 내기 시작한 균열이 모여서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쏟아져나온 거라 생각한다.
'지옥'을 재밌게 본 시청자지만, 반응이 호불호로 엇갈리는 것 같다.
처음 기획할 때부터 보편적인 대중들을 만족시키기보다는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리란 생각을 갖고 만들었다.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봐주셨고, 이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눠주시는 게 오히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거라 어느 정도 일정 부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화살촉에 대한 호불호도 있었다.
스피커의 실체를 보여주려 했다.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을 끌기 위한 목소리를 보여주는데 중점을 뒀다. 김도윤 배우가 많이 연구를 해준 거 같다. '목을 쉰 상태로 연기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불쾌하다'는 반응 역시 그런 식의 프로파간다성 스피커의 실체가 나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결말의 부활 의미를 두고 해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하나의 줄거리를 만들기보다는 '지옥'이라는 세계관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 이후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 수 있는 걸 뽑았다. 결말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올해 여름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만화로 만들기로 했다. 내년 하반기에는 만화로 선보일 수 있을 거 같다. 영상화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없다. 추후 논의가 필요할 거 같다.
'지옥'은 깊이 있는 질문과 장르적 재미의 중심을 맞춘 작품이라는 평이다. 연출을 하면서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만화나 작품들도 메시지를 가져가려 했다. 만화 '20세기 소년'을 대학교 때 처음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느낌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기획했다. 거기서 보여주는 균형감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지옥'을 구상했다.
'지옥'은 전작 '사이비'를 연상시키는 작품이기도 했다. 종교적인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 민감한 부분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리려 했나.
실체를 알 수 없는 우주적 공포, 그걸 맞닥뜨리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는 코스믹 호러(cosmic horro) 장르를 그리려 했다. 코스믹 호러는 인간의 나약함과 강함을 표현하기 좋은 장르다. '지옥'은 종교적 색채가 있지만 코스믹 호러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코스믹 호러의 관건은 인간들에게 닥치는 초현실적인 미스터리한 사건을 얼마나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느냐는 거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 작품 속 인간들의 고민이 현실 속 인간의 것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옥' 고지 설정이 기발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부산행'을 할 때부터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인간은 죽음이란 종착지가 정해져 있다. 종착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지옥'은 예상치 못하게 종착지가 고지됐을 때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했다. 작고 미묘한 설정의 차이로 평범한 삶과 극적인 삶을 가른다 생각했다.
제목 역시 직설적이다.
'지옥'이라는 제목은 단순하게 정했다.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그런데 제목을 짓고 의미가 생기더라. '지옥'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졌다. 지옥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에 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됐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런 지점, 상상들이 '지옥'이라는 작품을 할 때 큰 모티브가 됐다.
'부산행', '반도', '지옥'까지 희망의 상징으로 아이가 등장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니 아이들만 봐도 기분이 좋은 게 있다. 아이들은 아주 조그마한 사랑만 줘도 크게 만족을 하는 존재다.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희망을 받지 못하는 사회야 ㅇ말로 끔찍한 미래라 생각한다. 그런 게 작품에 반영되는 거 같다.
'연니버스'라는 표현도 나오고 있다. 좀비 바이러스(영화 '부산행', '반도')가 만연한 곳에서 대한민국에서 지옥의 사자가 튀어나와 죄인을 지옥으로 보내는데(넷플릭스 '지옥') 그 와중에 류승룡 배우가 나와서 염력으로 이들을 상대(영화 '염력')하는 이런 대혼돈의 세계를 볼 수 있을까.
실제로 스티븐 킹 감독의 세계관을 통합하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농담삼아 제 작품에 나오는 지명과 이런 걸로 통합해서 작품이 나오면 어떨까 말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제가 작업했던 회사가 다 다르다. 이 회사들이 통합된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란 생각은 안한다.(웃음) 그런 일이 일어나긴 힘들지 않을까.
'지옥' 공개 이후 박정자 역할의 김신록 배우님이 뜨거운 호평과 관심을 받고 있다.
'방법'이란 작품을 보면서 처음 봤다. 이전엔 정보가 많지 않았다. '버닝'에서 스티븐 연의 부잣집 친구 역할로 잠깐 나왔다고 하는데, 그땐 인상적이라고 생각 못했다. 그런데 '방법' 김용완 감독이 추천을 했고, 연기를 보면서 굉장히 놀랐다. 이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제가 생각했던 세계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셨다. 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많은 아티스트들이 함께 고민하고 완성했다는 생각이다.
웹툰을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현실 세계에서 구현되는 초현실적인 현상은 이질적으로 보이길 바랐다. 그런데도 이게 구현됐을때 실제로 일어날법하게 표현되길 바랐다. 저는 B급, 하위문화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런 부분(지옥의 사자 등)이 하위 문화로 보이길 바랐다.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지옥'에서 CG로 표현된 사자들의 외형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것 같다.
웰메이드를 지향하지만 B급 문화를 좋아한다. 모든게 웰메이드적 요소로 표현되기 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서브컬처가 시각적으로 구현되길 바랐다. 제 자체가 메이저한 감성을 갖고 있진 않다. 그런 호불호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생각한 것들이 시각적으로 잘 구현됐다 생각한다.
'지옥'을 작업하면서 최규석 작가와는 어떻게 역할 분담했나.
대학 다닐 때부터 친한 친구였다. '넌 이걸 하고, 난 이걸하고' 이런 분담은 없었다. 포괄적으로 구상하고, 이미지나 이런 것들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시리즈 결말이 웹툰과 달랐다.
시리즈의 결말은 웹툰 작업할 때부터 이야기가 됐다. 넷플릭스 제작이 결정된 건 웹툰 연재 중일 때였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에 대해 시리즈 제작팀과 미리 의논했다. 구상이 안 돼 안넣은 건 아니었다.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원작 웹툰에서는 지옥행을 고지하는 존재가 천사로 나온다.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가장 끔찍한 말을 하는 장면이어서 더 기괴했다는 반응이었는데, 시리즈에서는 악마의 형상이었다.
악마의 형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천사의 이미지로 보편적인 것들이 있다. 아름다운 여성, 날개 그런 것들인데 제가 주목한 건 거대한 얼굴의 이미지였다. 그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웹툰을 할 때도 그렇게 그렸고, 시리즈 담당 비주얼 팀들도 거기에 영감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도 종교가 있나?
얼마나 그 종교에 충실한가의 의미로 따진다면 특정 종교가 있다 말하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종교는 '믿음'보다는 '질문'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저도 교회를 다니긴 한다. 그렇게 보면 종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옥을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죽음을 고지받을 경우 가장 극단적인 상황이었던 20년 전 vs 30초 전 선택지 고르기 토론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고지를 받는 다면 어느쪽을 고르겠나.
저는 20년 전을 선택할 거 같다. 뭔가 정리를 할 상황이 많다. 시간이 필요하다.(웃음)
새진리회와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한 집단 린치는 지금의 한국 사회의 혐오를 반영하는 느낌이다. 영감이 된 사건이 있나.
기존 사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세계관을 짓고, 어떻게 움직일까를 묘사하려 노력했다. 특정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요소를 오히려 빼려 했다.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 사회에서 있을 법하게 그리는게 중요했지만 어떠한 특정 사건으로 보이지 않길 바랐다. 그게 주요했던 포인트였다.
이미 1000만 흥행 감독이고, 원작 반응도 좋아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는데 IP를 갖고 가서 수익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을 두고 왜 굳이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택했는지 궁금하다.
저는 웹툰 '지옥'으로 만들었고, 저의 원작 IP는 저와 최규석 작가가 갖고 있다. 이것에 대한 영상화만 봤을때, 그걸 잘 구현할 수 있는게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도 원작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어내길 바랐다. 그래서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었다.
'지옥'의 다른 버전도 나올 수 있나.
넷플릭스는 영상화의 권리만 갖고 있다. 원작에 대한 권리는 제게 있다. 넷플릭스가 영상화를 안한다고 하면 다른 곳에서 할 수도 있다. 크리에이티브 입장에서 넷플릭스는 좋은 플랫폼이다. 배급 방식이 글로벌하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영역 역시 넓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내에 먼저 보여진다는 제약이 없다보니 좀 더 자유로운 기획이 가능하다는게 장점이다. 다른 문화권을 가진 여러 나라의 반응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경험이고 새로운 부분이다. 다만 이와 비슷한 성공을 하기 위해 또 비슷하게 가고 싶지 않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의 입장이라 생각한다.
지옥행을 고지하는 천사 목소리는 정지소 배우가 특별출연했다.
천사라는 초자연적 존재에 관심을 가질 거 같았다. 작품 외적인 걸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그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제가 처음 콘셉트 아트를 그렸을 때 정지소 배우랑 닮았다 생각해서 부탁드렸다.
오프닝에서 차량과 사람들이 X레이로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보여줬다. 로봇같은 느낌도 드는데, 이런 시각적 효과를 구현한 특별한 의도가 있을까.
처음엔 오프닝을 생각안했다. 오프닝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오프닝도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내라고 하더라. '그것도 내가 만들어야 하나' 깜짝 놀랐다.(웃음) 저는 전문가가 만든 것처럼 화려하게 만들지 못하겠지만 이 작품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만약 신이 존재하면 우리를 어떻게 볼까 싶었다. 관조하거나 관망하지 않을까. 그걸 영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하다가 모든 것이 투시되고, 운동성이 없는 풍경 같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지옥 다음 이야기 말고 지금 진행중이거나 구상중인 작업이 있나.
넷플릭스와 함께 강수연 배우, 김현주 배우, 류경수 배우와 함께 SF 영화 '정이'를 만들고 있다. 이전과는 결이 다르다. 단편소설 같은 짧은 이야기라 생각한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서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 생각했는데, 넷플릭스에서 '재밌을 거 같다'는 피드백을 줘서 작업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연출 제의가 있었나? 좀 더 큰 무대에서 연출할 생각은 없나.
미국에서는 '부산행' 이후 얘기가 오간게 있다. 큰 무대, 다양한 무대에서 작업하고 싶은 건 창작자로서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욕구인거 같다. 다만 미국 특성상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이 있더라.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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