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국내 투자자의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로 상징되는 국내 주식에서 벗어나 해외 주식과 코인 등으로 투자처를 넓히고 있다. 동학개미에서 서학개미, 코인개미로 변신하는 셈이다. 올해 한국 주식시장이 역동성을 잃자 높은 수익률을 좇아 빠르게 움직인 결과다. 이에 따라 외화증권 투자 잔액은 이달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업비트의 하루 거래대금이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을 넘어서는 날도 잦아졌다.
포트폴리오 다양화는 거래 패턴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는 11월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25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매수 금액보다 매도 금액이 더 많은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1년 만이다. 주식 투자 대기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 예탁금도 10월 초 70조원에서 24일 기준 64조6700억원으로 줄었다.
국내 주식시장이 역동성을 잃자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는 평가다. 지난달 3000선 밑으로 떨어진 코스피지수는 옆으로 기었다. 10월 초부터 지난 25일까지 약 두 달간 3% 하락했다. 반면 미국 주식은 거침이 없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는 9% 상승했다. 개별 종목도 마찬가지였다. 테슬라(44%)와 엔비디아(58%) 등이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이 기간 현대자동차는 5% 오르고 삼성전자는 1% 하락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 보유 규모를 늘린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의 외화증권 투자 잔액은 지난 4일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유동성을 조이는 환경에서 성공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하기 위해 안 되는 쪽은 버릴 수밖에 없다”며 “지난 두 달간 이례적으로 수익률이 높았던 미국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투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국내에서는 자금이 빠지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두 달간 미국 주식시장의 강세가 투자자들이 발걸음을 서두르는 계기가 됐다. 메타버스와 전기차 테마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메타플랫폼스, 엔비디아, 테슬라 등 각 테마의 대장주가 있는 미국 주식 집중 현상이 심해졌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투자의 중심은 국내 증시였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전자 등 대형주들이 급등하면서 코스피지수는 1월 한 달간 8% 올랐다.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에 빠진 개인 투자자들이 잇따라 증시에 뛰어들면서 투자자 예탁금은 당시 74조원까지 불어났다. 1월 유가증권시장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26조원에 달했다.
11월 상황은 10개월 전과 완전히 다르다. 유가증권시장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11조원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이달에는 코스피지수가 1% 하락하는 등 지지부진한 박스권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 거래가 주춤한 사이 암호화폐거래소는 날았다. 1월까지만 해도 하루평균 거래대금이 3조원대에 불과하던 업비트는 이달 들어 하루평균 거래대금이 11조원으로 불어났다. 단일 암호화폐거래소의 하루평균 거래대금이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과 맞먹는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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