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역량을 준비하자고 도입된 제도가 정답 찾기보다 다양한 활동을 독려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다. 그런데 학종의 시대적 타당성이 객관식 선다형의 공정에 밀렸다. 물론 학종 출신이 정시 출신보다 대학에서의 학업성취가 훨씬 더 높다는 통계와 정시 합격생이 학종보다 강남 비율이 높다는 통계 때문에, 교육계는 학종을 주장한다.
그러나 학생·학부모에게 학종은 심각한 불공정 요소가 있다. 첫째, 모든 학생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종의 핵심은 교사가 써주는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이다. 그런데 시험 점수는 모든 학생이 다 기록되지만 과목별 세부특기사항을 포함해 교사가 써줘야 하는 각종 서술은 전국 70% 이상의 학생이 그냥 빈 칸이다. 학종으로 대입 지원할 학생들 중심으로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상이든 활동이든 일부에게 몰아주기가 횡행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들러리로 포기된다. 둘째, 교사의 학생부 기입 능력과 주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다. 교사가 어떻게 써주느냐가 대입 당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교사가 권력을 갖게 된다. 교권 강화 효과가 있어 공교육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고 보겠지만, 학생·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대입 당락이 교사의 주관과 글쓰기 실력에 의존하는 구조는 불공정하다.
수능은 전국 학생이 다 치를 수 있으니 기회는 공정하다 할 수 있으나, 통계상 강남·수도권, 고소득 학생이 더 많이 선발되므로 결과의 공정은 아니다. 학종은 70% 이상의 학생들이 학생부 작성조차 하지 않으니 기회는 공정하지 않으나 통계상 수능보다 전국 지역별 합격자 분포가 넓고 대학에서의 학업성취도가 더 높아 결과는 수능보다 공정하다.
그럼 어찌하자는 건가? 정시 확대로 공정을 잡으면서도 미래 대비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선발과 평가를 분리하는 것이다. 정시, 수시는 선발 방법이다. 같은 선발 방법이라도 측정하는 시험 문제를 미래형으로 바꾸면 정시 100%로 하더라도 현재의 학종보다 더 미래형일 수 있다.
선진 사례 중, 선발은 영국식을, 평가는 IB(국제바칼로레아)를 참고할 만하다. 우리 학종은 미국식을 교묘하게 적용한 모델이다. 내신과 다양한 활동을 상세 기입한 학생부 위주이면서도 수능 최저등급을 요구하는 곳도 많아 학생들이 둘 다 준비해야 하는 측면에서 비슷하다. 다만 미국 수능은 연간 6~7회 응시 가능하고 과목도 언어와 수리뿐이라 우리와 다르며, 우리 정시처럼 수능만의 전형이 따로 없기 때문에 입시 복잡도는 우리가 더 난해하다.
우리 정시는 영국식에 가깝다. 영국 대입은 국가 대입시험인 에이레벨이든 국제 공인시험인 IB든 점수만으로 입학 사정을 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만 면접을 할 뿐 모든 대학의 제출 서류는 자기소개서 하나와 시험점수뿐이다. 대학별 차이가 없어 간단하다. 점수만 제출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각 수업에서 뭘 했는지, 학생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구구절절 기록하지 않아도 된다. 대입이 교사의 학생부 글쓰기 실력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에이레벨이든 IB든 시험 자체가 토론·프로젝트 중심의 수업을 해야만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시처럼 시험 점수로만 평가해도 수업은 미래형으로 바뀐다. 에이레벨과 IB 모두 최종점수에 내부평가가 포함되기 때문에 교사의 영향력은 중시되지만, 교사의 채점이 중앙에서 조정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편차가 거의 없이 일관된 절대평가제가 가능하다. 교사도 학생부를 작성할 필요가 없어 오히려 수업과 지도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즉 선발을 영국식 정시로, 평가를 IB식 수능·내신으로 바꾸면 논술·프로젝트 수업을 해야만 고득점을 올려 미래형 교육으로 선진화할 수 있고, 점수로만 선발해도 되므로 대입의 단순화, 공정성까지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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