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39년 충남 천안 출생으로 중앙고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캐리커처를 그린 경험을 살려 만화가가 됐다. 1963년 만화 ‘카이젤상사’로 등단한 뒤 이듬해 고(故) 길창덕 화백의 추천을 받아 만화잡지 로맨스에 ‘너구리 형제’를 연재했다. 이후 ‘도깨비 감투’ ‘로봇찌빠’ ‘허풍이 세계여행기’ ‘서울 손오공’ 등의 작품을 냈다. 주로 어린이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명랑만화의 제왕’으로 불렸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로봇찌빠’는 1979년부터 14년간 꾸준히 인기를 누렸다. 단행본도 10권 이상이 나왔다. 이 작품은 길 화백의 ‘꺼벙이’, 윤승운 화백의 ‘맹꽁이 서당’과 더불어 한국 명랑만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로봇찌빠는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모바일 게임으로도 나왔으며 웹툰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고인의 작품은 투명인간과 인공지능 로봇 등 당시로선 새로운 내용과 한국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소재를 다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2008년 고바우 만화상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한국만화가협회 주최 ‘제21회 만화의 날’ 기념식에서 ‘명랑만화 5인방’으로 불린 길창덕 윤승운 이정문 박수동 화백과 함께 공로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4녀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은 2일 오전 6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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