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을 정치로 끌어들이면 경제·정치 다 망가진다

입력 2021-12-05 17:4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삼성을 찾아가 기본소득에 대해 언급해달라고 주문한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가 제안 내지는 권유처럼 말했지만, 듣는 기업 처지에선 지지 요구 혹은 압박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본소득은 지금껏 무수한 논란을 초래한 이 후보의 대표적 공약이다. 앞으로도 자진 철회를 하지 않는 한, 후보 간 토론회 때마다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선거이슈다.

이 후보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도 따로 제안했다는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 문제점이 다분하고 현실성도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임기 내 전 국민에게 연 100만원(청년은 200만원)을 준다는 이 공약은 재원 문제 등으로 국민 3분의 2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가 거듭 나왔다. 정치인도, 전문 학자도 아닌 기업인 입을 빌려 ‘공약 세일즈’에 나서겠다는 발상부터가 매우 부적절하다.

이참에 기업을 선거전에 동원하겠다는 어떤 시도도 근절돼야 마땅하다. 여든 야든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삼성의 이 부회장이 현 정부 내내 왜 수사와 재판에 시달렸으며, 2년6개월 실형은 왜 받았나. 일부 확정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돌아보건대 ‘정치와 기업의 잘못된 만남’이 근본 요인일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사활을 걸고 뛰어야 할 많은 기업인이 같은 배경에서 호된 특검 수사를 받았고 수시로 재판정에 불려갔었다. 어렵사리 가석방돼 회사 정상화에 매진하는 판에 여당 후보가 줄세우기를 하고 편가르기를 불사하면 다른 후보는 또 어떻게 나오겠나.

오히려 정치권이 앞장서 ‘한국형 정경유착’의 어두운 과거를 적극 청산해야 할 때다. 과거 정경유착의 그릇된 관행은 딱히 어느 쪽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국회·정부와 기업·산업계의 관계를 보면 정치권이 일방적 우위에 서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 못 할 엄연한 현실이다. 온갖 규제 입법부터 갑질 행정까지 정치가 사회적 먹이사슬의 정점을 장악해 비롯된 정치·경제·사회 문제점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선거판에 기업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도 그렇게 나온 것이기에 더욱 경계 대상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분투하는 기업들까지 표 계산에 따른 정략적 방편으로 이용한다면 대선후보들의 기업 방문을 금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필요하면 선거법도 고쳐야 한다. 친(親)기업을 하겠다면 경제단체와 각종 산업협회, 업종조합에만 가도 얼마든지 현장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부와 국회에는 이미 경영계가 제출한 정책건의서가 기업 크기별로, 산업별로 산처럼 쌓여 있다.

군부대를 찾아가 군의 지지발언을 요구하고, 검경을 방문해 지원을 압박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나. 설익은 논리와 편집된 사실관계로 국가대표급 기업을 줄 세우면 어떤 후유증이 따르겠나. 기업을 뒤흔들어 경제를 망치고, 정치는 더 망가질 것이다. 기업은 선거판에 절대 휘둘려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이런 분열적·퇴행적 선거전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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