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사회와의 상호작용 속에 진화한다. 문제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다. 역사는 이럴 때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오류를 가르쳐주고 있다. 먼저 AI는 별게 아니라고 폄하하는 부류다. ‘기회의 창’을 닫는 패배자를 자초하는 길이다. 다음은 AI로 혁신이 금방 현실이 될 것처럼 과잉 기대를 부추기는 부류다. 버블을 낳고 겨울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AI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총수요가 급감하고 경제가 파탄난다며 공포를 조장하는 부류다. 역사는 이들의 손을 들어준 적이 없다.
대선이 뜨거워지면서 AI가 곳곳에서 소환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디지털 대전환을 이끌겠다”고 하더니, 다른 쪽에 가서는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일자리가 대폭 줄어든다. 기본소득은 언젠가의 문제”라고 말한다. 디지털 전환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헷갈린다. 역사 인식이 없기로는 여야 따질 것이 없는 게 이 시대의 비극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당 후보가 갖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 많다. 미국 디지털 기업의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데 국내 기업인은 뭐 하느냐는 인식부터 그렇다. 한국 기업인은 더 이상 누구를 추종해야 할 위치에 있지 않다. 사대주의부터 버리는 게 좋겠다.
본론으로 들어가 AI 시대엔 일자리가 없어지고 수요가 사라지고 시장이 고갈된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AI로 대체되는 일자리만 있다면 또 모르겠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기존 일자리도 생산성이 높은 쪽으로 진화할 것이란 생각은 안 하는 모양이다. AI로 일자리 총량이 줄어들고 불평등이 더 심해질 것이란 설득력 있는 전망을 본 적이 없다. 지금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자는 이유도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고 생산성이 올라가고 신수요·신시장이 출현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 아닌가. 죽은 카를 마르크스가 환생한 것도 아니고 AI 시대 자본주의 종말론 같은 주장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성급한 기본소득 논란이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재원이다. 탄소세를 생각한다면 번지수가 잘못됐다. 에너지 전환·탄소중립은 엄청난 고통과 부담을 수반한다. 탄소세를 도입해 그 돈을 오로지 탈탄소에 투자해도 모자랄 판이다. 대안으로 AI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이유로 로봇세나 데이터세 얘기가 나오지만, 이 세금은 탄소세와 성격이 다르다. 촉진해야 할 디지털 전환의 발목을 잡을 위험성이 그것이다. AI가 아니라 잘못된 정책 대응이 새로운 일자리와 시장을 앗아가고 말 것이다. 언론이 비판만 한다고 하니 대안도 제시하겠다. 여당 대선 후보는 ‘전환적 공정성장’이란 구호를 들고나왔다. 성장하려면 전환해야 하고, 전환하려면 공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전환기에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기회를 가져야 한다면, 가장 필요한 공정은 교육을 통한 ‘기회의 리세팅’일 것이다.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은 낡은 선동에 불과하다.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이 문제라는 노동경제학자들의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 해결책은 ‘기술과 교육의 경주(race)’에서 찾아야 한다. 무책임한 교육당국을 해체해서라도 초·중·고 정보교육을 확대하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시 샤픽 교수 얘기로 돌아온다. 그는 사람마다 평생에 걸쳐 인출할 수 있는 교육계정을 열어주자고 제안한다. ‘트랜스포머’처럼 언제든 필요한 능력을 배양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다음 세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현세대도 재교육을 통한 기회 부여가 절실하다. 성장하려면 전환해야 하고, 전환하려면 교육해야 한다. 여당 대선 후보에게 제안한다. ‘기본소득’ 말고 ‘기본교육’을 말하는 게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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