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 정유·화학 계열사 현대오일뱅크가 미국 빅데이터 분석 유니콘 기업인 팔란티어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았다. 구글, 애플마저 압도하는 데이터 분석 기술을 갖춘 팔란티어와 단순 제휴를 넘어 동맹 관계를 맺고 스마트팩토리(스마트공장) 구축에 나선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최근 현대오일뱅크가 팔란티어로부터 2000만달러(약 240억원) 규모의 지분을 투자받았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투자를 계기로 두 회사는 현대오일뱅크의 경영 전반에 대한 빅데이터 플랫폼을 만들고, 스마트공장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앞서 팔란티어는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사진)에서 약 3개월간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스마트공장 구축을 위한 기초 작업이 자본 투자로 이어진 셈이다.
팔란티어는 페이팔 공동 창업자로 실리콘밸리의 거물 투자자인 피터 틸이 2003년 설립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에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장했고, 2011년 미국 정부의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에 일조해 이름을 알렸다. 이후 민간 분야에 진출해 사세를 키웠다. 에어버스와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머크, 크레디트스위스 등 항공과 에너지, 금융 분야 글로벌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 지난해 9월 뉴욕거래소에 상장한 팔란티어의 시가총액은 약 400억달러(약 47조원)다.
아직 비상장사인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가 10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팔란티어가 확보한 지분은 소수점 수준이다. 업계는 그러나 투자 자체보다 현대중공업그룹과 팔란티어가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끈끈한 관계를 구축한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팔란티어는 현대오일뱅크를 이상적인 파트너로 판단했다. 팔란티어는 현대오일뱅크의 정유사업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수소 등 최근 추진 중인 신사업의 가치와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 산 혁신에 대한 현대중공업그룹의 의지도 강하다. 경영진은 스마트공장 구축을 기업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탄소 배출량 감축 등 전에 없던 압박이 정유화학업계에 가해지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공정 스마트화 등 생산 혁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건설기계부문 계열사인 현대두산인프라코어도 2019년 팔란티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 비즈니스 데이터를 통합·분석할 수 있는 빅데이터 협업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번 투자 유치는 내년 상장을 추진 중인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 증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내년 상반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연내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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