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종이책에 대한 고민

입력 2021-12-12 17:07   수정 2021-12-13 00:14

문명의 진보와 인류의 지적 쇄신에 함께해 온 종이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다들 그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매년 대형 서점과 도매상의 부도 소식이 들려오고, 모든 수치가 종이책의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 대신 전자책과 오디오북 형태로 책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락세라고는 하나 종이책이 쉽사리 사라질 존재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그것의 쓰임새와 아우라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책의 연착륙을 낙관하기 힘들게 하는 강력한 외부적 요인이 마음을 괴롭게 한다. 바로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다. 종이책은 부정할 수 없이 나무를 베어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산업의 산물이다. 물론 종이책으로 나무가 줄어들고 환경 파괴로 연결된다는 건 단순 논리에 불과하다. 그러기엔 전체 종이산업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종이책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과잉적, 낭비적 요소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출판사는 지금까지 700여 종의 책을 펴냈다. 그러니 창고에 쌓인 책의 재고만 해도 수십만 권에 이른다. 이 중 소비자의 손에 닿지 못하고 버려지는 책이 너무 많다. 팔리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번역서 비중이 높아 저작권사와 계약이 만료돼 어쩔 수 없이 기계로 잘라버리는 숫자가 더욱 많다.

환경위기가 아니더라도 버려지는 책에 대한 위화감이 늘 있었다. 내 안에서 점점 자라난 그 목소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불감증은 아닌지 돌아보라고 질책한다. 어떻게 하면 버려지는 책을 줄일 수 있을까.

근본적 방안은 수요가 공급을 지배하는 온디맨드일 것이다. 오늘날의 주거생활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볼 때 집에 책을 쌓아두는 인구는 점점 줄고 있다. 그렇다고 전자책 판매가 확 늘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전자책 시장 확대가 쉽지 않은 것은 공급자 측의 소극적인 대응에도 원인이 있다는 판단이다. 종이책이 안 팔린다고 호소만 할 게 아니라 그것을 꼭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고급화·소량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히려 전자책을 좀 더 대중화해야 하지 않을까. 종이의 물성에 영향을 덜 받는 정보 위주의 책들은 전자책을 선출간하고 종이책을 후출간하는 것도 공격적인 전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판매 플랫폼에서 독자들이 종이책 출간을 원하는지 여부를 체크해 출판사로 피드백해주면 그 데이터로 종이책 초판 부수를 결정짓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종이책은 오랫동안 아껴서 읽는 소장용 도서가 되는 것이고, 전자책은 지식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책 고유의 역할을 하는 지배 매체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종이책을 포기하지 않고 더욱 공들여서 만들고 책의 물성도 계속 진화시켜나갈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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