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 서울대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성공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적절한 약가를 책정해야 기업이 지속적으로 R&D에 투자할 수 있다”며 “이런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혁신신약에 한해 ‘선등재-후평가’ 등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등재-후평가는 허가와 동시에 임시가격으로 먼저 등재한 뒤 이후 비용효과성평가와 약가협상 등 후평가를 통해 최종 건강보험 적용 약가를 정하는 방식다. 최종가격이 정해진 뒤 임시가격과의 차액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올해 국내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초고가약이 허가를 받으며 학계와 업계에서 선등재-후평가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올해 3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허가받은 CAR-T 치료제인 노바티스의 ‘킴리아’는 치료비가 5억원이다.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운 혈액암 환자들의 생존률을 높여줄 수 있는 치료제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환자 접근성이 떨어진다. 5월 허가받은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는 치료비용이 25억원에 달한다. 한 전문가는 “선등재-후평가 같은 제도가 없으면 어떤 기업이 한국에서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겠느냐”며 “기업이 혁신신약을 개발하려면 동기 부여가 될 만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비즈니스 생태계란 다양한 주체가 서로 협력해 하나의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적인 공동체로서 산업을 바라보는 개념이다. 제약산업은 R&D, 임상, 생산, 허가, 급여 결정, 유통, 처방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해관계자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 생태계 관점에서 정부, 산업계, 학계 등 모든 이해당사자를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최영현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혁신정책연구센터 회장은 “미국 영국 일본은 1개 정부기관에서 관련 전략을 총괄한다”며 “우리도 신약 개발 장기 정책을 수립할 기구를 상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 관련 전문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임상, 개발 등 각각의 단계에 전문성을 지닌 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첨단 바이오헬스 융복합 분야의 민·관·학 합동 교육과정을 설립해야 한다”며 “1조원 규모의 신약 개발 특화 펀드를 조성해 국내 기업이 자체 수행할 수 있는 자본과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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