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통상 12월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돼 본격적인 이사철로 여겨진다. 자녀 교육을 위한 임차 수요가 많은 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 등 학군지에선 매년 이 즈음 ‘전세난’이 반복됐다. 그러나 올해는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신규 전세대출 규제 강화 등으로 학군지 전세시장에서도 매물이 쌓이는 분위기다.
마음이 급해진 집주인들은 호가를 수천만원씩 낮추고 있다. 은마 전용면적 76㎡는 지난 9월 보증금 10억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지만, 현재 매물 호가는 최저 6억5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7월 말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직전의 계약금액(4억6000만~6억50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대치동 B공인 대표는 “한 집주인은 보증금 7억4000만원에 은마 전용 76㎡ 전세 매물을 내놨다가 찾는 사람이 없자 가격을 세 차례나 낮췄다”며 “현재 호가는 6억80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은마 건너편에 있는 ‘미도1·2차’도 이날 기준 전세 매물이 262건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날(24건)과 비교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대치동 학원가 가운데에 있는 ‘삼성1차’도 같은 기간 20건에서 68건으로 늘었다.
목동 아파트 전세시장도 비슷하다. ‘목동신시가지 6단지’는 이날 기준 전세 매물이 33건으로, 지난해 같은 날(8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 단지에서 가장 작은 적용 47㎡는 최고 6억원(지난 7월)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지만 현재 시장에는 4억8000만원짜리 매물이 나와 있다. ‘목동신시가지3단지’도 같은 기간 전세 매물이 2건에서 23건으로 증가했다.
서울 25개 자치구별로는 광진구의 전세 매물이 1년 전 226건에서 이날 1000건으로 약 342.4% 늘어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이어 △은평구 264.3%(275건→1002건) △송파구 218.4%(1074건→3420건) △서대문구 178.4%(362건→1008건) △강남구 153.7%(2146건→5445건) △서초구 137.3%(1345건→3192건) 순으로 집계됐다.
다만 전세 매물 증가가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보유세 부담 등으로 전세가 월세로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서울에서 월세를 조금이라도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6만280건으로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급증하면서 집주인들 사이에서 전세 대신 월세를 받아 세금을 충당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서울 내 재건축·재개발 공급이 지체되면서 청약 대기 수요가 쌓이고 있는 점도 ‘전세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분양가 산정 문제 등으로 연내 계획된 공급이 무산된 단지가 적지 않다. 강동구 둔촌주공(1만2032가구)과 서초구 방배5구역(3080가구)·방배6구역(1131가구), 송파구 잠실진주(2636가구) 등이다. 여기에 사전청약을 하는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를 노리는 수요까지 임대차 시장에 남아 전세 수요를 떠받칠 것이란 분석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사전청약을 기다리는 전세 수요가 3기 신도시 첫 입주가 시작되는 2026년까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계약갱신 행사가 끝나 세입자들이 새 전세를 구하게 되면 매물이 다시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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