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이 글로벌 선도 기업을 추격해 고속 성장하던 시절엔 수평적 소통보다는 지시와 복종이 중요했다. 최고경영진으로부터 내려온 지시를 전 임직원이 빠르게 이행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추격자로서 보면 당시 ‘상명하복’은 조직문화의 핵심 가치 중 하나였던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수평적인 소통과 젊은 직원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이 조직문화의 필수가 됐다. 조직이 경직돼 있고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인재는 언제든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는 시대다. 인재를 확보하고 인재 유출을 막는 일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최근 MZ세대와의 소통을 다양한 방식으로 강화하려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임금 문제만 손보는 수준이 아니다. 직원이 서울 양재동 본사나 경기 화성 남양연구소로 출근하는 대신 집 주변에서 근무할 수 있는 ‘거점 오피스’를 운영하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장거리 출퇴근 직원을 위한 위성 오피스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서울에서는 계동사옥, 원효로사옥, 대방사옥, 성내사옥 등이 거점 오피스로 활용되고 있다. 인천 삼산사옥, 경기 안양사옥, 의왕연구소 등도 마찬가지다. 경기 성남 판교 등지에도 거점 오피스가 만들어졌다.
현대차 내 승진연차 제도도 폐지됐다. 기존엔 대리와 과장이 되려면 각각 4년을 기다려야 했다. 차장, 부장, 임원이 되려면 최소 5년이 걸렸다.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려면 최소 23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승진 이듬해부터 승진 대상자가 된다.
영보드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포스코 전략에도 반영된다. △협업 KPI △정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도입 △남직원 태아검진 휴가 △본인 포상 셀프 추천 제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밖에 영보드의 의견을 바탕으로 출산과 양육 친화적인 기업문화 조성을 위한 남직원 태아검진 휴가 제도 및 직원이 자기 주도적으로 추진한 우수 업무에 대해 본인을 포상자로 셀프 추천할 수 있는 공모 포상 제도 등도 도입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창의성과 열정이 있는 직원이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할 수 있도록 ‘C랩’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C랩은 일종의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임직원이 스타트업의 도전 정신을 삼성전자 안으로 끌어오는 효과를 노렸다. C랩 과제에 참여하는 임직원은 1년간 현업에서 벗어나 독립된 근무 공간에서 스타트업처럼 근무할 수 있다. 예산 활용, 일정 관리 등 자율성도 최대한 보장받는다.
소통을 위해 다양한 정보기술(IT) 솔루션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웹엑스나 줌을 활용해 재택 근무 중 회의를 하거나, 메신저 기반의 공동 작업 도구인 ‘팀즈’를 활용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
특히 계열사마다 사업의 특수성을 살린 유튜브도 직원 소통의 훌륭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직원 노래 경영 대회인 ‘워킹싱어’를 2년째 열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아예 즐거운직장팀을 별도로 조직해 유튜브와 웹엑스 등 비대면 방식으로 MZ세대와 소통하는 조직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올초 즐거운직장팀의 올해 활동 계획을 알리는 킥오프 행사는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방송돼 2030세대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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