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중은행장은 “국내 은행들의 영업이 가계대출 위주의 손쉬운 영업으로 쏠려 있는 것은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은행들의 가계대출 비중은 총대출 자산의 50~60% 수준. 선진국에선 가계대출은 주로 지역상호금융 및 금고 등이 맡고 전국구 대형은행들은 기업금융(IB), 자산관리(WM) 등에 주력하는 ‘분업’이 활성화돼 있다.
국내 은행들도 수년간 ‘비(非)가계대출 분야 확대’를 부르짖어왔다. 가계대출의 ‘파이’만 나눠 먹어선 미래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계대출 영업을 넘어서려는 국내 은행들의 새로운 시도는 번번이 가로막혔다. 은행 탓도 있지만, 법률 및 규정에서 ‘허용된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와 ‘낡은 전업주의의 틀’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은행들은 올초부터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상장지수펀드(ETF)를 실시간 매매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은행의 퇴직연금 계좌로는 ETF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해 소비자가 연금 계좌를 증권사로 옮기는 현상이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이 ‘총대’를 메고 금융위원회에 실시간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비조치의견서를 요청했으나, 금융위는 최종적으로 불허했다.
ETF 위탁매매는 은행에 허용된 집합투자증권의 투자중개업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암호화폐업도 은행들의 진출이 사실상 막힌 분야다. 지난 9월 특정금융정보법 시행을 앞두고 몇몇 은행은 실명계좌를 확보하길 바라는 ‘4대 암호화폐거래소’ 외의 중소형사와 손잡길 원했다. 업비트와 손잡고 덩치를 키운 케이뱅크의 사례를 본 지방은행들이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결국 은행들은 암호화폐 거래 관련 자금세탁의무방지 책임을 지우는 당국의 방침에 따라 법적 리스크를 넘어서기 힘들다고 판단해 제휴를 포기했다. 싱가포르 최대은행 DBS가 암호화폐거래소를 직접 설립한 것에 비하면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은행들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일일이 정해주는 세밀한 규제체계 아래에선 새로운 시도가 막힐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원들이 ‘해봤자 막히겠지’라며 스스로를 가두리 속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 혁신을 막는 측면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신사업에 대해선 당국의 핑계를 대며 안 될 이유부터 찾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털어놨다.
빈난새/김대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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