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놀이를 하면 내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희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래의 자유분방한 속성만큼이나 나의 마음도 단순하고, 자유로웠던 시절이었다. 놀이터에서, 운동장에서, 해변에서 어린 시절 나는, 또 우리는 각자가 소망하는 무언가를 매번 만들고, 그리고, 쌓아 올렸다.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직장인이 되고, 가끔은 내가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래성이 뭐야,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쌓아 올린 튼튼한 건물이 내게 더 중요하지. 그리고 사회에서도 이걸 더 쳐주니까, 안 그래? 비가 오면 허물어질 그런 모래성 말고, 콘크리트와 같은 튼튼한 자재로 세워진 건물이 더 중요하지. 그렇지만 튼튼한 건물은 그냥 지을 수 없다, 일단 부지가 있어야 하고, 관련된 법도 알아봐야 하고, 꼼꼼히 설계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충분한 인력, 예산,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니 건물을 세우기 전부터 계산해야 할 것이 참 많다. 선뜻 집을 짓자고 말하기도 어렵다. 중간에 수정도 힘들다, 설계한 대로 계획한 대로 가지 않으면 무너져버릴 테니까. 투자한 시간과 돈은 어쩌고? 많은 것을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사실 요즘 무엇을 할 때마다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을 먼저 확인하게 된다. 불확실성과 리스크에 움츠릴 때, 과거의 실패에 발목 잡힐 때, ‘그래, 하던 대로 하자’의 보수적인 나와 악수하며, 늘 가던 길로 가게 된다. 그게 제일 안전하니까. 그게 제일 편하니까. 시간과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언제고 부서질 것 같은 그런 모래성 말고, 진짜 성을 쌓아야 하는 거였지.
그런데 내가 쌓고 있는 성은 누군가의 무수한 모래성 쌓기의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모래성을 쌓아보지 않았는데, 진짜 성을 어떻게 지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완성품을 만들어. 모래성과 콘크리트 성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어쩌면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란 것을 잊고 산 것 같다. 결과물도 중요하고, 과정도 참 중요하다.
과정도 결과물도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면… 어떻게 즐기면서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 나름의 결론은 ‘그냥, 매일 모래성을 쌓는 것이다.’ 쌓고, 또 가끔은 자의적으로 허물어도 보고. 뭐 어쩔 수 없이 누군가 모래성을 허물어버려도 괜찮다. 어차피, 허물어질 것을 알고 쌓은 거니까.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그 모래성이 진짜 성이 될 수도 있는 거고. 그럼 그때, 과거의 나를 고마워하겠지. 내가 여태까지 했던 일들이 단순 삽질이 아니라, 다 의미 있는 시도이자 도전이었구나. 그런 때가 올 것이라 나는 믿는다. 설계대로 성을 쌓는 것도 모래성을 쌓는 일도 모두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오늘도 모래성을 쌓는 마음으로 살아보고자 한다.
모래성을 쌓는 마음, 그건 뭘까. 비록 공들여 만든 작품이 무너지더라도, 언제고 다시 쌓을 수 있다는 마음. 나는 이걸 회복 탄력성을 기르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싶다. 사소한 시도와 실패도 다 나의 경험치가 되고, 이런 경험치가 나를 언제고 일어나게 할 것이라 믿는다. 일단은 잃을 것부터 생각하지 말고, 아니 조금 잃어도 괜찮다고 용기 내보고 한 번 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듯 일단 아무것이라도 쌓아 올려볼 테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운동장에서, 해변에서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뭐든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했던 나의 모습처럼 말이다. 자, 오늘도 모래성을 쌓으러 가자.
심민경 씨는 어쩌다 첫 직장으로 스타트업을 선택하게 되어 스타트업 문화에 빠진 5년차 직장인. 현재 라이브커머스 회사 그립컴퍼니에서 사업개발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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