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돈 풀기만 하면 성장?…기시다 정책 거꾸로 가고 있다"

입력 2021-12-20 17:19   수정 2021-12-21 01:29

“일본이 지난 30년 동안 배운 것은 재정 확장과 통화 완화정책을 통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성장에 대한 기대 없이는 물가가 오르지 않고 정부만 비대해진다는 사실이다.”

시라카와 히로미치 크레디트스위스재팬 수석이코노미스트(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1983년부터 16년간 일본은행의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20년 넘게 크레디트스위스 등 글로벌 금융회사의 수석이코노미스트를 맡아 일본 경제를 분석해왔다. 2015년엔 일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물가상승률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이코노미스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출범한 기시다 내각은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고 사업자와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분배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라카와는 정부 주도의 임금 인상에 대해 “생산성을 높여야 경제가 성장하고 임금도 따라 오르는데 정부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민간에 돈을 뿌리기만 한다고 성장하는 게 아니다”면서 “민간이 성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등 사회적 펀더멘털(기초체력)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디지털 개혁과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 민간 부문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감세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시다 정부의 접근법 자체가 잘못됐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돈을 쓰지 않고, 돈을 쓰지 않으니 기대도 오르지 않는 악순환을 끊지 않고서는 아무리 돈을 풀어도 장기 침체(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산업구조를 완전히 바꾸고 성장을 방해하는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직업 안정성이 지나치게 보장된 나머지 과잉고용 상태에 이른 고용시장을 유연하게 바꾸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시라카와는 “산업구조를 바꾸고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해 인력 과잉 업종에서 인력 부족 업종으로 남는 인력을 전환해야 고령화와 인구감소를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야 인력이 남는 업종은 생산성이 올라가고 인력이 부족한 업종은 일손이 부족해 성장을 멈추는 일을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재정·통화정책에 의존하면 정부만 커지고 규제는 늘어난다고도 비판했다. 한국도 인구 고령화로 인한 재정상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 그는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이 큰 정부로 가는 것을 막지 않으면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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