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전 한국전력 사장(사진)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원가를 반영하지 않은 전기료 탓에 전기를 물처럼 펑펑 쓰는 문화가 만연해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연료비를 전기료에 반영하기로 해놓고 잇따라 ‘유보권한’을 발동해 전기료 인상을 억제하고 있는 기재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정부와 한전은 올 2분기와 3분기에 이어 내년 1분기에도 전기요금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평균 연료비가 큰 폭으로 뛰었지만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내세워 전기료 인상을 막은 것이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한전의 적자로 쌓이고, 결국 부메랑처럼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게 김 전 사장의 진단이다.
그는 “전쟁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선 긴급조치를 통해 전기료를 통제할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전기료를 묶어 놔야 할 특별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전기료 등 공공요금으로 물가 관리를 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며 “물가상승률이 9%대인 브라질도 전기료를 통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전 사장은 결국 나중에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전기료 인하를 현재의 혜택으로 포장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도 꼬집었다. 그는 “작년 한전은 적자 누적으로 70조원을 빌려 썼다”며 “이자만 2조원을 냈고, 이는 국민 1인당 4만원의 부담을 지운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의 경영 악화는 심화하고 있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2021~2025년 중장기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올해 영업손실 규모가 4조3845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전력 도매가인 올 11월 통합 계통한계가격(SMP)은 ㎾h당 127.06원으로 전년 대비 155.1% 올랐지만, 전기료를 잇따라 동결한 영향이다. 올 3분기 기준 한전의 차입금 규모는 71조9000억원으로, 차입금 비율이 110%를 넘어섰다.
김 전 사장은 “이런 식으로 전기료를 계속 낮게 유지하면 탄소중립 달성도 불가능할 것”이라며 “전기 절약 등 수요 관리를 위해선 원가를 반영한 가격 정책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물가가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오르고 있는 선진국도 에너지 가격 인상 요인을 즉각 요금 인상 등으로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또 “전기료 부담을 공공기관이 끌어안고 가는 것은 1960년대에나 가능한 낡은 방식”이라며 “정부 밖 독립기구에서 투명한 절차에 따라 전기료를 정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허청장, 산업자원부 차관 등을 역임한 관료 출신으로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지멘스 회장 등을 거쳐 2018년 4월부터 올 4월까지 한전 사장을 지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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