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러시아가 벨라루스·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가는 ‘야말-유럽 가스관’의 밸브를 잠가 버렸다. 지난 18일부터 수송량을 평소의 4%대로 낮추더니 21일에는 아예 공급을 중단했다.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이 운영하는 이 가스관은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의 20%를 차지한다. 유럽연합(EU)은 천연가스 수입량의 4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에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사상 최고로 뛰었다. 이달 초의 두 배, 연초 대비 10배 이상 폭등했다. 이대로 가면 천연가스로 생산하는 전력이 줄어 유럽 전역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2006년과 2009년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가는 가스관을 막는 바람에 프랑스와 이탈리아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서방 언론은 ‘에너지 무기화’를 앞세운 푸틴의 정치적 도박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다. 당장의 압력은 가스프롬이 운영할 러시아-독일 간 신설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 2’를 빨리 가동하라는 것이다. 지난 9월 완공된 이 가스관을 놓고 독일은 ‘공급사와 운송사의 분리’를 명시한 EU 에너지 규정을 들어 내년 상반기까지 승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더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패권 다툼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한 데 대해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푸틴의 계산된 도발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푸틴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東進)을 막는 정치 목적과 새 가스관 승인이라는 경제 성과를 동시에 잡으려 한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러시아발 유럽 가스대란의 불똥이 우리나라에도 튀고 있다. 유럽이 러시아산 대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늘리자 공급 부족으로 국내 LNG 가격이 지난 6~7월 대비 세 배 이상 올랐다. 가스 공급이 줄어들면 석탄발전을 재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래저래 “곳곳이 지뢰밭”이라는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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