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인류를 강타한 사상 초유의 팬데믹으로 미술은 무엇이 바뀌었을까. 풍부해진 유동성 덕분에 미술시장은 호황을 구가했고 작품 값은 올랐다. 때때로 재난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렸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양차 세계대전 때의 초현실주의나 1980년대 민중미술처럼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기는커녕 사회 변화를 담아내려는 단발적인 시도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국의 반체제 작가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64)가 “지금 예술은 절반은 죽은 상태”라고 일갈한 이유다.
서울 사간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대규모 개인전 ‘아이웨이웨이 : 인간미래’가 열리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한 회화와 설치, 사진 등 작가의 대표작 120여 점을 펼친 전시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鳥巢)’ 설계에 참여했을 정도로 잘나가는 예술가였다. 하지만 같은 해 쓰촨 대지진에서 정부가 사망자 수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당국에 미운털이 박혔다. 이후 체포와 가택 연금 등으로 고초를 겪다가 유럽으로 망명했고 지금은 포르투갈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전시를 계기로 한 서면 인터뷰에서 “인간이 정신적·사회적 대위기에 직면했는데도 미술의 반응은 너무나 미약하고 이론과 미학, 철학적 사유 모두 사실상 마비 상태”라고 꼬집었다. 예술은 인류가 처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나는 것인데, 위기 상황에도 변화가 없는 예술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는 예술계의 책임이 크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는 중국 미술계를 예로 들며 “조 바이든이 중국 대통령이 된다 해도 중국의 예술은 지지부진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중국 미술은 당국의 눈치만 보는 ‘관변 예술’로 전락했고,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와 사실 추구라는 입장을 포기하면서 생존이 위태로워졌다는 진단이다.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특정 정파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려는 국내 예술계 일각에도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다.
전시장에서는 행동하는 예술가로서 그가 걸어온 길을 감상할 수 있다. ‘검은 샹들리에’(2017~2021)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샹들리에지만 가까이서 보면 인골(人骨)이 결합한 형상을 띤 작품으로, 코로나19 등으로 죽음에 직면한 인류를 묘사했다.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 시리즈(사진)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과 파리 에펠탑 등 각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앞에서 중지를 세운 사진을 모은 작품이다.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2015)은 감시카메라와 수갑으로 된 화려한 금빛 설치작품으로, 권력의 감시를 상징한다. 난민들이 벗어놓은 구명조끼를 연결한 ‘구명조끼 뱀’(2019)도 인상적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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