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광우병' 치료 단서 찾았다

입력 2021-12-24 17:21   수정 2021-12-24 23:57

‘인간 광우병’으로 불리는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CJD)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뇌세포를 죽여 스펀지처럼 만드는 프리온이라는 물질의 작용원리가 밝혀져서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연구진은 변형된 프리온이 뇌세포에 축적되는 과정을 확인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2일자에 밝혔다. 프리온은 단백질이지만 바이러스처럼 전염되거나 감염될 수 있는 매우 특이한 물질이다. 알츠하이머 치매와 증상이 비슷하지만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다.

연구진은 변형된 프리온이 뇌세포의 ‘축삭’ 부위에 집중적으로 축적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뉴런’이라고도 불리는 뇌세포는 국자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뉴런은 국자의 둥근 부분에 해당하는 ‘신경 세포체’와 긴 손잡이에 해당하는 축삭으로 이뤄져 있다. 세포체에서 발생한 전기적인 신호는 축삭을 통해 다음 뉴런으로 전달된다.

이전까지는 변형된 프리온(PrP)이 뉴런 전반에 걸쳐 분포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연구진은 변형 프리온이 세포체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로지 축삭 부위에서 뭉쳐진 형태로 존재했다.

연구진은 변형 프리온이 축적되는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변형 프리온을 주입한 쥐의 뇌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변형 프리온이 ‘소낭’이라고 불리는 작은 주머니를 통해 세포체에서 축삭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이동 과정에서 소낭끼리 서로 결합하며 덩치를 키운다는 것이다. 축삭은 이렇게 커진 소낭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했다.

연구를 주도한 산드라 엔칼라다 스크립스연구소 교수는 이렇게 형성된 소낭에 ‘엔도그레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엔칼라다 교수는 “소포체나 축삭은 모두 필요 없는 소낭을 분해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면서도 “축삭은 소포체에 비해 이 기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엔도그레솜처럼 크기가 큰 소낭은 분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엔도그레솜에서 축적된 변형 프리온은 축삭의 신호전달 기능을 방해했고, 결국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뉴런은 사멸했다.

연구진은 엔도그레솜이 만들어지는 데 관여하는 네 가지 단백질(키네신, Arl8, Vps41, SKIP)을 발견했다. 4개의 단백질은 변형 프리온을 포함한 소낭이 축삭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하고, 다른 소낭과 합쳐지도록 했다. 쥐 동물모델에서 네 가지 단백질의 발현을 줄이자, 축삭으로 이동하는 변형 프리온 소낭의 수가 확연히 줄었고, 소낭끼리 결합하는 현상도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뉴런 역시 사멸되지 않고 정상 뉴런처럼 작동했다. 엔칼라다 교수는 “엔도그레솜 형성을 막음으로써 프리온으로 인한 신경퇴행성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며 “지금까지 이렇게 구체적인 프리온의 작동 경로가 밝혀진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변형 프리온에 의해 발생하는 CJD는 세계적으로 연간 100만 명당 한 명꼴로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환자의 약 15%는 유전에 의해 발생하며, 아주 드물게 제대로 소독하지 않은 도구로 수술받은 환자도 감염된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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