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답정너' 식 카드 수수료율 재산정 방식

입력 2021-12-26 16:54   수정 2021-12-27 01:11

“공정·타당하게 적격비용을 산정해 수수료율에 반영했다.”

정부와 여당이 내년도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매출 구간에 따라 0.1~0.3%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한 지난 23일 금융위원회는 이렇게 자평했다. 카드사들은 현재의 수수료 체계로도 신용판매 부문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금리 인하로 카드사 조달비용이 감소했고 비대면 영업이 확대돼 인건비와 영업비 같은 일반관리비용이 줄어 인하 여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75%에서 연 1%로 올리며 20개월간 이어졌던 ‘제로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 내년 1분기 추가 인상이 유력하다. 카드사의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연체율도 높아져 카드사의 위험관리비용도 오르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과거 0%대 금리 상황을 대입해 카드 수수료를 깎아버렸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향후 수년 동안 적용될 수수료를 정하는데 미래 예상치는 반영하지 않고 과거 데이터만 집어넣는 산식이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카드사들은 그동안 자제했던 여행·항공·호텔 등 마케팅을 확대할 유인이 크다. 하지만 이 점 역시 반영되지 않았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해 수수료율을 재조정하는 제도가 카드사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드사가 허리띠를 졸라매 인력 구조조정을 하고 오프라인 영업점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면 다음 재산정 주기 때 수수료가 더 내려가 버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카드사들이 올해 카드론(장기카드대출) 호황으로 이자수익이 급증해 역대급 실적을 올린 점을 감안해 정부가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카드론 수익은 일시적일 뿐이다.

전자기기와 자동차, 유통 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혁신적인 상품이 속속 등장하지만 유독 신용카드만 ‘구관이 명관’이다.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 아래에서 카드 수수료가 내려가기만 해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선 카드 이용자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어서다. 네이버·카카오페이 등 빅테크가 결제시장에 치고 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소비자 혜택을 줄여야 하는 카드사의 심정도 복잡하다.

당정은 브리핑에서 “적격비용 제도가 신용판매 부문의 원가와 손익을 적절히 반영하는지 재점검하겠다”고 했다.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도 당장 개선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대선을 앞두고 소상공인의 표심을 의식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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