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두의 법과 사랑] 법정에서 본 '아파트 이름 변경'

입력 2021-12-26 17:12   수정 2021-12-27 01:09

주거 용도를 넘어 투자 수단이 된 아파트는 상품처럼 건설사별로 브랜드를 차별화하고 있다. 영어로 된 새로운 브랜드를 붙이면 같은 건설사에서 시공했어도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기존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면서 같은 건설사의 새 브랜드를 붙이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현대홈타운’을 ‘현대힐스테이트’로, ‘롯데아파트’를 ‘롯데캐슬’로 바꾸는 것이다.

개인주택과 달리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의 명칭 변경은 여러 당사자의 이해 충돌을 가져온다. 통상 명칭 변경 과정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입주자대표회의가 낸 공부상 변경신청을 거부하면 행정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체로 법원은 조경 등 외관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거나 명칭을 시대 흐름에 맞게 아름다운 것으로 바꿔 심미적 감각과 문화적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입주자들의 욕구를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명칭 변경을 제한하는 법령의 규정이 없는 한, 그리고 명칭 변경에 따른 타인의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가 없는 한, 소유권의 권능으로서 아파트 명칭변경권을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구분소유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전제로 판결은 대체로 아파트 명칭 변경에 세 가지 요건을 제시한다. 첫째, 변경될 브랜드명에 관한 권리를 가진 건설사의 승낙이 필요하다. 아파트도 재화의 일종으로 유명 기업 제품의 브랜드명은 그 제품에 대한 약속이자 평판으로 인식돼 지식재산권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승낙 과정에서 브랜드 사용에 대한 대가 지급은 당연할 것이다. 둘째, 외관상 변경할 브랜드명에 부합하는 아파트의 실체적·유형적 변경이 있어야 한다. 브랜드 변경 시 건설사는 새로운 브랜드를 적용하기 위해 아파트 마감 수준을 상향 조정하게 하는 등의 요구를 하는데 이를 충족해야 한다. 셋째, 명칭 변경에 따라 인근 아파트와 명칭에 혼동을 가져오는 등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인근에 이미 변경하려는 새로운 브랜드를 쓰고 있는 아파트가 있는 경우 그 아파트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명칭 변경은 아파트 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과 건설사의 브랜드명 교체에 따라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건설 시기가 다른 아파트를 2차, 3차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뒤에 세워진 아파트에 프리미엄, 즉 ‘더 좋다’는 뜻을 가진 수식어를 붙여 차별화하기도 한다. 그런데 앞서 건축된 아파트가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후발 아파트의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하면, 후발 아파트는 명칭에 또 다른 수식어를 붙여 차별화한다. 이렇다 보니 아이들 표현으로 “슈퍼 울트라 킹 왕 짱”에 다름 아닌 온갖 좋은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리게 된다.

최근 아파트 명칭 변경에 관한 색다른 판결이 선고돼 눈길을 끌고 있다. 고급아파트 단지로 유명한 서울 소재 어떤 동(A동) 인근에 있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실제 아파트가 위치한 동(B동) 이름을 버리고 A동 이름을 붙인 명칭 변경을 시도했다. 해당 구청이 거부하자 행정소송으로 비화했는데, 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청구를 기각했다(현재 항소심 계류 중). 무분별하게 A동이란 명칭을 아파트 이름에 넣도록 승인할 경우 행정동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위치 파악에 혼란이 생길 수 있으며, 행정동 주민들 사이에 심리적·감정적 괴리 내지 거부감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1심 판결의 이유다.

아파트 명칭 변경에 관한 판결 중에는 궁극적으로 시장 원리에 따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 있다. 그러나 입주자대표회의, 건설사, 변경하려는 새로운 브랜드를 쓰는 인근 아파트 구분소유자, 특정 동 지역주민, 나아가 아파트 원매자 등 여러 당사자의 이해를 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오죽 어려웠으면 판결에서 “시장 원리”라는 모호한 말을 썼을까 싶다. 법정에서 본 아파트 공화국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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