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것은 브람스가 주요 작품마다 ‘묘한’ 지시문을 달아놨다는 점이다. 단순히 빠르게(알레그로)나 보통 빠르기(모데라토)로 주문한 경우는 드물다. 현악 6중주 1번 1악장에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빠르게, 그러나 너무 지나치진 않게)’로 연주하라고 신신당부한 것이나 교향곡 1번 1악장을 ‘운 포코 소스테누토 알레그로(약간 끌면서 빠르게)’로 지정한 것처럼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때로는 소심하게 느껴지는 주문이 적지 않다.
때론 이탈리아어 지시문만으론 성에 안 찼는지 모국어인 독일어로 ‘매우 흥분해서, 하지만 너무 서두르진 말고(Sehr aufgeregt, doch nicht zu schnell)’라거나 ‘적당히 움직임이 있게(Mßig bewegt)’라고 주문한다. 연주자로서 난감하긴 여전하지만 말이다.
흔히 장중하고 거대한 음악은 금관악기가 빵빵하게 소리를 내지르고, ‘포르티시모(매우 강하게)’로 총주를 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강경’ 일변도만으로는 진정으로 강한 음악, 깊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밀고 당기고, 중용을 지향하고 양보를 감수하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더 단단한 음향을 빚어내는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2021년이 막을 내린다. 언제나 그렇듯 지나간 한 해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올 새해를 생각해본다. 창대했던 기대, 단단하기만 했던 각오에 비하면 막상 손에 쥔 결과물이 변변찮은 경우가 대다수의 삶일 것이다.
이처럼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가 반복되는 것은 노력보다는 허황한 기대를 앞세우고, 일확천금식 ‘한 방’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던 탓이 클 것이다. 음악으로 치면 ‘매우 강하게’만 연속으로 주문해 웅장한 소리를 빚고자 한 셈인데…. 의료 시스템을 차곡차곡 개선하지 못하고, 사회의 힘든 곳에 체계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탓에 불협화음만 낸 것은 아닐까. 국민을 혹하게 하는 ‘빈말’만 앞세우는 정치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목소리를 내지르지 않아도, 포르티시모를 남발하지 않아도 웅장한 음악을 만들었던 브람스처럼 2022년 임인년(壬寅年)에 내실을 다진 탄탄한 결과물을 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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