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더 주세요.” “안 됩니다. 1인당 두 개로 제한돼 있습니다.”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남동부에 있는 소방서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코로나19 자가 진단키트 때문이었다. 제이슨 밀러는 “가족이 5명인데 진단키트를 두 개만 주면 어떡하느냐”며 “학교를 가야 하는 세 아이라도 검사할 수 있도록 한 개만 더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워싱턴DC 직원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사정은 딱하지만 진단키트는 한 사람당 두 개밖에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워싱턴 남부 애틀랜틱로에 있는 소방서 상황도 비슷했다. 게리 로페즈는 “개학하기 전에 무조건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라면서 진단키트도 충분히 안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워싱턴 북부 지역에서 30분 동안 빗길을 달려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하다”며 발길을 돌렸다.
워싱턴이 진단키트 대란을 겪고 있다. 워싱턴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보름 새 500% 늘면서 확진자 검사 수요가 폭증하면서 생긴 일이다. 워싱턴의 인구당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미국 내 1위지만 진단키트는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다.
3일 학교 개학을 앞두고 진단키트 수급 상황은 더 꼬였다. 워싱턴 내 대부분의 직장과 학교에서 복귀 조건으로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요구해서다. 미국 내 최대 약국 체인 CVS 매장 곳곳엔 ‘가정용 진단키트 매진’이라는 문구가 걸렸다. 워싱턴 C스트리트에 있는 CVS의 매장 직원은 “연휴 기간 많은 사람이 진단키트를 찾으면서 어제 모두 재고가 소진됐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진단키트 5억 개를 무료로 배포하겠다고 했지만 초반부터 삐걱대고 있는 셈이다. 휴일인 이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평일에 정상 가동되던 워싱턴 내 코로나19 검사소가 대부분 문을 닫으면서 시민들이 진단키트 확보에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일에 진단키트를 무료로 나눠주던 도서관도 휴일엔 문을 열지 않았다. 진단키트 보급소 역할을 제대로 한 곳은 워싱턴 내 4개 소방서뿐이었다.
진단키트 공급난은 도미노처럼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코로나19 검사를 제때 받지 못한 워싱턴 시민들이 진단키트 원정에 나서면서 인근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에서도 진단키트 매진 현상이 속출했다. 버지니아 맥린에 사는 한인 김모씨는 “도서관에 있던 무료 진단키트가 모두 동이 나서 유료 검사소로 갔는데 세 시간 동안 기다려 겨우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엔 하루 뒤 결과 통보를 받았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결과가 나오지 않아 문의했더니 검사자가 너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일부터 개학하면 학교에서 확진자가 속출할 수 있어서다. 일부 대학을 뺀 워싱턴 내 초·중·고교는 원격 형태가 아닌 정상수업을 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대응해 근무 인력을 최소화하기로 한 워싱턴 내 주요 기업과 다른 행보다.
미국의 아동·청소년 백신 접종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내 5~11세 어린이의 백신 2차 접종률은 15%에 불과하다. 12~17세 청소년 접종률도 53%로 40~49세 접종률(71%)에 크게 못 미친다.
네일 세갈 메릴랜드대 공중보건학과 교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워싱턴엔 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 인구 비중이 높아 당분간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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