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던 치매 노인의 은행 계좌에서 13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린 60대 여성과 그의 아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수원지법 형사15부(재판장 조휴옥)는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69)씨와 아들(41)에게 각각 징역 4년과 3년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A씨 등은 2019년 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피해자인 B씨의 계좌에서 200여 차례에 걸쳐 총 10억 91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또 B씨의 치매 증상이 악화하고 있던 2015년 “평소 내가 고생했으니 돈을 달라”는 취지로 말해 1억원을 송금받는 등 5차례에 걸쳐 2억3000만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혐의도 받고 있다.
중국 국적인 A씨는 B씨가 실버타운에 거주한 2010년 9월부터 사망한 2020년 12월까지 약 10년간 가사도우미 겸 간병인으로 근무했다. A씨는 독신이었던 B씨 주변에 재산을 관리할 만한 사람이 없고, 치매 증상으로 B씨의 건강 상태가 악화하자 범행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평소 B씨 계좌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A씨는 B씨의 체크카드를 몰래 가지고 나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B씨 돈을 본인 명의 계좌 등으로 이체했다. A씨의 아들은 B씨의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하거나 인터넷 도박을 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B씨 계좌에서 이체된 돈은 B씨가 생전에 나에게 정당하게 지급한 돈”이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또 경찰 조사 단계에서 B씨가 작성했다며 “내 재산 관리는 A씨가 맡는다. 내가 죽으면 전 재산을 A씨에게 준다”는 내용의 유서도 제출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유서에 쓰인 필체를 감정한 결과 ‘감정 불능’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의 진료 기록 등을 보면 피해자는 치매 질환으로 인지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등 심신 장애 상태에 있어 평소 자신의 계좌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간병인인 피고인 등은 피해자의 심신 장애 상태를 이용해 피해자 계좌에서 돈을 이체함으로써 재산상 이득을 취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해자가 피고인을 의지하며 신뢰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장기간에 걸쳐 범행을 저질렀는데도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의 조카 등 유족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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