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 사살하라" 명령 뒤…카자흐 거리에 사상자 속출

입력 2022-01-09 18:07   수정 2022-01-23 00:31

카자흐스탄 정부가 가스값 인상에 분노한 반정부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경고 없는 조준 사격을 승인했다. 카자흐스탄 전 정보기관 수장은 이번 사태의 배후로 지목되며 반역 혐의로 체포됐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대응 수위를 높이면서 시위대와 군경 간 유혈 충돌은 진정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8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법 집행기관과 군대에 시위대를 향해 경고 없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며 “항복하지 않는 자는 제거될 것”이라고 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테러리스트’ ‘살인자’ ‘반역자’로 지칭하면서 협상 불가 방침을 강조했다.

유혈 사태로 번진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는 1주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의 예르잔 바부쿠마로프 부시장은 9일 “일부 무장 세력이 여전히 저항하고 있어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상황이 안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도 지난 6일 카자흐스탄에 평화유지군 2500명을 파견한 상태다. CSTO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옛 소련 6개국이 결성한 안보협의체다.

카자흐스탄 국가보안위원회(KGB)를 이끌던 카림 막시모프 전 위원장은 6일 전격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카자흐스탄 당국은 막시모프 전 위원장이 이번 사태와 연관됐다고 보고 있다. ‘막후 실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측근인 그가 현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이번 시위를 기획했다는 것이다.

KGB 제1부위원장이자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조카인 사마트 아비쉬도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KGB 전 지도자들이 최근 시위의 배후에 있는 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공모했다”고 전했다.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지면서 사상자도 늘어났다. 시위대 사상자는 160명을 넘어섰다. 진압 병력에서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자흐스탄 당국은 9일까지 시위 참가자 약5800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대와의 충돌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서방 국가들은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유럽연합(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카자흐스탄 국민의 권리와 안전이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카자흐스탄 당국은 시위 사태에 대응할 능력을 갖췄는데 왜 외부 세력(러시아 등)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카자흐스탄 정부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거점 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것을 우려해서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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