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학창 시절에 미래 꿈에 대한 설문을 하면 의사, 판사, 과학자 등 사회에서 전문가로 존경받는 직업들이 가장 많이 나왔다. 물론 요즘 어린이들에게서는 웹툰 작가나 유튜버가 되겠다는 답변이 많다고 하니,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 필자가 가진 의사라는 직업은 사실 심각한 고민 없이 세상과 집안 분위기, 학업 성적에 맞춘 타협의 결과다. 필자는 부끄럽게도 학창 시절 공부에 쫓겨서 미래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의사가 된 필자는 현재 행복한 삶을 잘 누리고 있는지, 간혹 스스로 자문해 보기도 한다.
종합병원 의사라는 게 외부의 시각만큼 큰 부자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꽤 괜찮은 수입이 보장된다. 하지만 거의 매일같이 아주 고통스러운 외래 진료가 기다린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뇌졸중 환자가 대기하는데, 이들을 만날 시간은 평균적으로 3분 정도다. 3시간이면 60명, 6시간 진료 땐 100명의 환자를 만나기도 한다. 필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환자를 진료하는 교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환자와 충분한 소통을 하며 적절하게 진료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외래에서는 기계적인 질문과 답의 연속이다. 시간과의 사투가 벌어지니 환자 진료의 보람은 사치일 뿐이다. 마치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거대한 공장의 노동자가 된 느낌이다. 내게 의사는 생계를 위한 생업일 뿐, 자아실현을 위한 본업은 아닌 것 같다. 필자의 인생 목표 중 하나는 ‘세상을 바꾸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의사는 근본적으로 치료제를 적용하는 직업이지, 이를 개발하는 직업은 아니다. 물론 의사로서의 삶이 소중한 분들을 폄하하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필자가 꿈꿔왔던 이상적 직업인의 모습이 현재의 의사 모습은 아닐 뿐이다.
필자는 2016년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를 세우고 나서 나이 쉰이 넘어선 지금, 인생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가슴 벅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이런 도전이 궁극적으로는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보람을 가져온 나의 선택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복싱계의 전설 무함마드 알리가 한 말이 있지 않은가? 당신의 꿈이 당신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면, 그 꿈은 충분히 크지 않은 것이라고. 누구나 조금은 두렵지만 가슴 뛰고 설레는 본업을 갈망하지 않을지. 인생은 길지 않지만, 남은 인생은 의외로 길다. 가슴 뛰는 본업을 인생에 한 번쯤은 추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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