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장회사협의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7개 경제단체는 10일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추진을 전면 재검토해달라”고 촉구했다. 단체들은 성명에서 “국민연금이 기금 확충에 전력을 다해도 부족한 마당에 불투명한 장기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에 몰두하는 것에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기업 이사 등의 위법행위로 주식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음에도 기업이 책임 추궁 등을 게을리하면 수탁위를 대표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소송 제기를 결정하고, 수탁위는 예외적인 경우에 나선다. 국민연금이 계획대로 다음달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안건을 의결하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200~300개 상장사가 소송 대상이 된다.
경제계는 기금운용 수익률에 책임을 지지 않는 수탁위가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섣부른 소송으로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다. 수탁위 인적 구성을 보면 전문성과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운용 수익률에 책임을 지는 기금운용본부가 소송의 실익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게 경제계 입장이다.
국민연금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대표소송을 제기했다가 패할 경우 부담은 가입자 몫이다. 승소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은 국민연금이 아니라 기업이 챙긴다. 대표소송 탓에 기업 평판이 나빠지고, 주식가치가 떨어지면 주주도 손해를 보게 된다. 기업 경영 위축으로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기업들의 우려다. 국민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공적연금이 자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선례를 찾기 어렵다.
경제단체들은 대표소송 제기를 위한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연금 내부 지침을 개정하는 대신 국민연금법에 근거와 구체적 기준을 마련한 뒤 대표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표소송 기준에 대해선 기업 이사의 고의에 의한 위법행위로 회사에 중대 손해가 발생했고, 해당 사실이 판결 등으로 확정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계는 대표소송 남발을 막을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소송으로 기업가치가 떨어지거나 소송에 패해 연금 수익률이 악화하면 소송 찬성자에게 책임을 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측은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기금운용위에서 결정된 사안”이라며 “정책실행기관이 공식 입장을 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일규/ 김종우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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