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기업이 로봇을, 전자 회사가 차를 만들겠다는 산업의 ‘오버래핑’만이 아니다. 공간 경계도 허물어진 지 오래다. 한국형 발사체의 고단한 역사를 기억하는 이라면, CES 전시장 한복판을 차지한 미국 우주여행선 ‘드림체이서’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발사체라는 지구적 경쟁에 묶여 있는 사이 드림체이서를 만든 시에라 스페이스는 외계 행성을 거주지로 만드는 ‘테라포밍(terraforming)’ 기술로 우주적 경쟁을 주도했다.
CES는 우리의 빈틈을 비추는 역설적 경고다. 국가 주도의 누리호 프로젝트 하나에 온 국민이 매달려 ‘성공 발사’를 조마조마 기다리는 게 현실이다. 국가가 실패하면 답은 없다는 얘기다. 실패는 그래서 금기어다. 누리호는 헬륨탱크가 떨어져 나가 추진체 내벽에 균열을 일으켜 연료가 새어나갔던 것으로 결론 났다. 내압 상승 가능성을 부품에 반영하지 못한 설계 오류 탓이다. 46초 일찍 엔진이 꺼져버린 미스터리가 풀린 것이다. 문제는 실패를 대하는 자세다. 누리호가 목표 궤도 진입에 실패한 정황이 포착됐는데도 정부는 ‘뜻깊은 성공’ 꼬리표를 달아버렸다. 축적의 시간보다 ‘성공한 정권’의 이미지가 먼저였기 때문일 것이다.
10여 년 전, 나로호가 두 차례 발사에 실패하자 책임자가 줄줄이 감사에 끌려다니고 옷을 벗었다. 국가의 실패 인정보다 희생양을 먼저 찾았던 국가주의의 폐해만 축적되는 건 아이러니다.
‘우주적 광폭 경쟁’을 주도하는 미국은 어떨까. “경쟁국이 상상도 못할 기술을 찾아낼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실패 프로젝트가 실체다. 실패 가능성을 미리,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프로젝트를 따낼 확률은 제로(0)다.” 미국 정부와 20년 이상 일한 동포 과학자의 말이다. 실패의 축적을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간주한다는 게 극과 극이다.
스페이스X의 꿈을 이루려다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일론 머스크도 “실패는 하나의 옵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4년 전 하늘로 쏘아 올린 로켓 발사체 팰컨 헤비의 추진체를 역추진 방식으로 회수했다. 추진체 재활용 시대를 민간이 먼저 연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영역을 화이트 스페이스라고도 부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만이 성공의 발자국을 남길 영예를 누린다. 실패의 가치에 눈뜬 초격차 리더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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