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라며 실손보험료 올려놓고…'흑자' 車 보험료는 그대로?

입력 2022-01-14 07:51   수정 2022-01-14 08:27


올해 평균 14%대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보험료 인상이 결정된 가운데, 자동차보험의 보험료 인상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손보험의 경우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 손실로 보험료 인상이 추진됐는데, 자동차보험은 오히려 흑자가 예상돼서다. 이에 소비자들은 올해 무조건 자동차보험료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보험료 인하는 절대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다. 근 10년간 늘어났던 적자 규모를 이제 회복하는 단계인 만큼, 보험료 인하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이유다. 여기에 정비수가 인상,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 올해 손해율 악화 요인을 주장하고 있다. 보험료 결정에 실질적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금융당국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올해 자동차보험료 인상 여부와 적정 인상률 등을 검토하기 위한 모니터링 단계에 착수했다. 자동차보험료는 표면적으론 보험사 자율에 맡겨져 있지만, 금융위가 매년 보험료 관련 지침을 내리는 식으로 요율 결정에 개입해 왔다. 차를 갖고 있으면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특성을 반영해서다. 자동차보험은 보험상품 중 유일하게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돼 있다.

일단 지난해 실적만 놓고 보자면 상황이 나쁘진 않다. 지난해 11월 기준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 등 주요 4개 손보사의 자동차보험 연간 누적 손해율은 78.9~80.5%로 집계됐다. 이는 사업운영비 등 지출을 고려한 적정 손해율을 준수한 수치다. 보통 업계에서는 손해율이 80%가 넘어가면 손실이 난다고 판단한다. 자동차보험에서 연간 기준 4년 만에 흑자 달성이 유력시되는 이유다.

소비자들은 자동차보험료 인하론을 펴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 손실을 이유로 올해 실손보험료가 상당폭 인상된 논리대로라면, 흑자가 난 자동차보험에서는 보험료를 인하해야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올해 실손보험의 보험료 인상률은 평균 8.9∼16%로 결정된 상태다. 위 인상률이 적용되면 3∼5년 주기의 갱신이 도래한 가입자 중 총액 기준 50% 넘게 인상된 '보험료 폭탄'을 맞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오는 4월 보험료 인상률이 적용되는 1세대 실손(구 실손·2009년 9월까지 판매) 가입자 중 일부 고령층에선 보험료 인상률이 100%까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면서 국내 대형 손보사가 성과급 지급을 앞두고 있단 점도 보험료 인하론에 불을 붙이는 요인이다. 실제로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손보사는 올해 3월까지 연봉 대비 30% 안팎의 성과급을 지급할 계획이다. 국내 주요 10개 손보사의 지난해 3분기 기준 누적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53% 급증한 3조4000억원을 기록한 결과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손해는 보험료를 올려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고, 이익은 임직원이 나누어 갖는 건 이율배반적 소비자 배신행위"라며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개선된 만큼 보험료 인하의 필요성은 명확하다. 보험료 인상을 멈추고 이윤을 소비자들과 공유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올해 보험료 인하는 절대 불가하단 입장이다. 근 10년간 늘어났던 적자 규모를 이제 회복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실제로 손보사들은 지난 10년간 2017년을 제외하면 매년 자동차보험에서 적자를 봐왔다. 자동차보험은 2018년 7237억원 적자를 기록한 뒤 2019년엔 1조6445억원까지 적자 폭을 키웠다. 2017년 한 해 266억원 흑자를 달성한 이후 3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작년 손해율 개선이 단발성 성과인 데다, 올해 보험료 인상 요인이 산적해 있다는 것도 보험료 동결을 내세우는 근거다. 지난해 12월부터 차량 정비수가가 평균 4.5% 인상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업계는 정비수가 4.5% 인상 조치가 보험료 1%대 인상 압력으로 작용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완화로 차량 운행이 증가하면서 손해율이 악화할 여지도 크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실손보험료율과 자동차보험료율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도 무리라고 주장한다. 가입자와 상품 구조가 완전히 다른 시장에서 보험료율을 떠넘기는 식의 조치가 이뤄진다면 시장의 기본 원리를 해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보험 모두 국민 대다수가 가입하고 있단 점에선 공통분모가 있으나, 상품의 고유 성격이 다른 만큼 실손보험의 적자 상황과 자동차보험의 흑자 전환은 구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에서 흑자를 달성하더라도 그간의 적자 폭을 메울 정도가 아니다. 여기에 올해는 보험료 인상 요인도 산적한 편"이라며 "두 보험료를 엮게 되면 실손보험의 적자를 자동차보험에 떠넘기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금융당국도 실손보험료율과 자동차보험료율을 연관 짓는 것은 불가하단 입장이다. 다만 실손보험료 인상 조치를 소비자 부담을 증가시키는 외부적 요인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게 금융위 측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보험료가 동결되거나 소폭 인하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손보사들은 자동차보험에서 거의 매년 적자를 내왔지만, 흑자를 올린 2017년에는 보험료를 내린 바 있다. 금융당국은 늦어도 오는 3월까지 자동차보험 요율 관련 지침을 업계 측에 전달해 보험료 정산에 반영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료 인하 여력, 인상 요인과 더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애로사항과 소비자 부담, 물가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자동차보험에 대한 모니터링에 착수한 만큼, 1~2개월 내에는 자동차보험 요율에 대한 분석 결과가 업계에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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