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DHMO를 ‘무색, 무취, 무미이며 수많은 사람을 죽인 보이지 않는 살인자(Invisible Killer)’라고 소개한 소년이 있었다. 사람들은 소년의 주장에 따라 DHMO 사용 금지 탄원서를 제출했고, 이 프로젝트는 ‘우리는 얼마나 잘 속는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돼 화제를 모았다. DHMO가 무엇이기에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걸까.
얼마 전 공개된 SF시리즈 ‘고요의 바다’에는 달에서 발견된 DHMO가 중요한 물질로 등장한다. 2070년대 지구에는 바닷물이 말라붙어 물고기가 멸종하고 비도 내리지 않아 사람들은 등급별로 물을 배급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5년 전 치명적인 사고로 폐쇄된 발해 기지에 남아있는 샘플을 회수하기 위한 임무가 시작되고 엔지니어와 의사, 과학자 등으로 팀이 꾸려진다. 이들이 발해 기지에서 회수해야 하는 샘플은 ‘달의 DHMO’였다.
DHMO는 ‘Dihydrogen Monoxide’의 약자로, 수소 2개에 산소 1개가 결합된 ‘물’을 가리킨다. 물은 중독성이 크고 많은 물리·화학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거의 유일하게 고체, 액체, 기체 상태로 변하는 물질이다. 영하로 내려가면 얼고, 100도로 가열하면 끓기 때문이다.
물이 아닌 에탄올, 올리브유 같은 액체는 다르다. 에탄올의 어는 점은 -114도라서 고체 에탄올을 보기가 어렵고, 올리브유의 주성분인 올레산은 끓는점이 약 360도라서 기체 올레산을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은 적절한 어는점, 끓는점을 갖고 있어 얼음과 물, 수증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에탄올, 올레산과 물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물질의 끓는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분자량이다. 사람으로 치면 몸무게에 해당하는 것이 분자량으로, 에탄올은 46, 올레산은 282나 된다. 대체로 분자량이 큰 물질은 분자들끼리 잡아당기는 힘이 커서 쉽게 엉겨 붙어 고체가 되고, 웬만큼 가열해서는 기체로 날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올레산의 끓는점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물에 적용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은 분자량이 18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과 분자량이 비슷한 메테인(CH4)의 끓는점이 -162도인 걸 보면, 물은 분자량에 비해 끓는점이 엄청나게 높다. 물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것이다.
물의 특별함은 분자를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가 빚어내는 수소 결합에 있다. 분자들끼리 잡아당기는 힘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수소 결합은 독보적으로 강해서 힘이 아니라 ‘결합’이라고 불린다. 전자를 잘 잡아당기는 플루오린(F), 산소(O), 질소(N) 원자들이 수소와 결합해서 만들어진 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으로, 분자량이 작아도 끓는점이 높은 원인이 된다.
하지만 수소 결합을 하는 것뿐 아니라 수소 결합의 개수 또한 중요하다. 물은 한 분자당 수소 결합을 4개까지 할 수 있다. 물보다 분자량이 큰 에탄올 또한 수소 결합을 하는데도 물의 끓는점이 더 높은 이유가 그것이다. 이것은 물을 매우 특별하고 독특하게 만들어준다.
얼음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물질 대부분은 고체가 액체에 가라앉는다. 분자들끼리 빽빽하게 모인 상태가 고체이기 때문에 액체보다 밀도가 커서 가라앉는 것이다. 하지만 고체 얼음은 액체 물보다 밀도가 작아 물 위에 뜬다. 물 분자들이 수소 결합으로 인해 정사면체 구조로 4개씩 달라붙으면서 텅 빈 육각 고리 구조가 생겨 부피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얼음은 물 위에 뜨고, 위에서부터 얼기 시작하며, 물속의 고기는 겨울철에도 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신기하고 독특한 물질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건 지구에 물이 흔하기 때문이다. 지구 표면을 70% 이상 차지하고 있는 물은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는 근간이다. 독특한 성질을 갖는 신기한 물질인 물이 지구상에서 부족해지거나 오염되는 일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이 부족해져서 등급제로 물을 배급받아야 하는 세상은 절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임인년 새해에도 맑은 물을 마음껏 마시며 호랑이처럼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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