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도체 관련 예산이 전체 얼마인지 통계가 나와있질 않습니다. 그 통계를 알아야 해외랑 비교를 할텐데 수치 조차 관리가 안되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반도체 업계 사람은 이처럼 토로했다. 지난 11일 반도체를 비롯해 배터리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안(반도체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 법안(CHIPS for America Act)’ 제정을 통해 2026년까지 약 59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올해에만 24조 5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예산이 정확히 얼마인지 통계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반도체를 포함한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10대 전략 기술에 총 3조 3000억원을 지원하기로했다. 하지만 이가운데 반도체 지원예산이 얼마인지는 알기 힘들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어디를 찾아봐도 정부 전체 반도체 예산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며 "다른 지원책들과 뭉뚱그려 예산규모를 부풀리는 데 급급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처럼 법안에 예산을 명시할 수 없다면 각 부처간 반도체 관련 예산을 최대한 확보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장기간에 걸쳐 예산 지원을 못박아둔 것은 그만큼 반도체 지원 정책이 오랜 기간 일관성있게 추진될 것이란 것을 예고한 셈"이라며 "전세계 반도체 기업들도 미국 정부를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도 수조원대 이르는 반도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구마모토현에 소니와 대만 TSMC가 합작해 올해 착공에 들어가는 공장에 약 4000억엔(약 4조152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20명 이내로 구성된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는 국가첨단전략기술 및 산업에 대한 주요 지원정책을 심의·의결하는 역할을 한다. 부처간 칸막이로 산업 지원안의 진행 속도가 지체되는 일을 막자는 취지다. 또 천재지변이나 국제통상 여건의 급변으로 국가첨단전략기술 관련 품목의 수급에 지장이 초래되는 경우 정부가 6개월 이내에 긴급히 수급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학계에선 나노반도체종합연구소를 설립하자는 대안을 내놨다. 반도체 초격차기술을 선점할 수 있는 글로벌 수준의 반도체 연구소를 만들자는 취지다. 반도체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면서 연구소를 통해 연구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는 게 학계 주장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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