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고도화 설비 투자에 6조3000억원을 썼다. GS칼텍스는 2013년까지 5조원을 투자했다.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 역시 1조~2조원대 투자에 나섰다. 그 덕분에 국내 정유사들의 고도화율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이날 기준 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율은 40.6%, GS칼텍스 34.4%, 에쓰오일 33.8%, SK(울산) 24.9%다. 일본과 중국 정유사들은 20% 초반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10%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최근 친환경과 탄소중립 이슈가 부상하면서 고도화 설비 투자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석유 제품이 순익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투자를 꺼리는 요인 중 하나다. 지난해 3분기까지 정유 4사의 정유 부문 영업이익률은 2~3% 선이다. 고도화 설비에 투입하는 원료인 벙커C유 가격도 오름세다. 지난해 1월 배럴당 49.98달러였던 벙커C유 가격은 연말엔 69달러 선까지 상승했다. 벙커C유 가격이 비싸질수록 고도화설비의 수익률이 떨어진다.
정유업계는 대안으로 화학제품 사업을 꼽고 있다. 친환경·탈탄소 트렌드에 부합하면서 이익률도 높다. 원유 부산물을 활용해 생산하는 폴리에틸렌(PE)이 대표적이다. 친환경 비닐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존 PE 공장을 친환경 PE 라인으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그렇다고 고도화 설비 투자를 중단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국내 정유사 매출의 70~80%가 정유 부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원유 수입처 다변화를 위해서라도 고도화 설비는 필요하다. 고도화율이 높아야 품질이 낮은 중남미산 원유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정유 설비 고도화에 힘입어 중동산 원유 비중을 2019년 42.3%에서 2021년 25.9%로 줄였다.
업계 관계자는 “ESG 경영 가속화로 정유산업이 어려워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단시일 내에 ‘파이’가 줄 가능성도 높지 않다”며 “현재 수준에서 고도화 설비를 유지하는 게 국내 정유업체들의 공통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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