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세계 9위, 주식시장 시가총액 세계 8위다. 선진국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이런 한국을 MSCI는 신흥시장 취급한다. 선진지수 진입에 앞서 풀어야 할 숙제를 들이민다. 요구사항은 크게 세 개다. ①역외(한국 외 지역) 외환시장 24시간 개방 ②공매도 전면 재개 ③외국인투자등록제 등 촘촘한 외환부문규제 철폐. ②와 ③은 정부가 결단하기에 달렸다.
더 까다로운 건 ①이다. 외환시장 개방이 환율변동성을 높인다는 염려가 크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자신감에 차 있다. 환율 출렁거림에 맞설 역량과 대외신인도를 강조한다. 역대 최대 외환보유액(4630억달러), 사상 최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13년 연속 무역수지 흑자(295억달러), 굳건한 국가신용등급 등이 근거다. 환율안정 책임 100%를 외환당국이 떠맡겠다는 비장한 결기(?)가 엿보인다.
그런데 환율 변동 폭 확대가 우리 경제에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예컨대 원화 강세는 수출기업에 마이너스지만 내국인 해외 증권투자자에게는 플러스 요인이다. 특히 2014년 이후 내국인 해외증권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 환율 변동에 따라 득실이 엇갈리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동시에 증가했다. 이런 구조변화를 정부 외환정책 프레임이 반영할 필요가 있다. 때마침 MSCI선진지수 편입의 핵심 이슈도 결국 ‘자유로운 환율변동을 감당할 준비가 얼마나 돼 있나’이다. 이 준비를 하려면 정부뿐만 아니라 은행 기업 등 민간부문도 서둘러야 한다.
우선 기형적 외화보유 구조에 수술이 시급하다. 지금 우리나라 전체 외화 대차대조표를 그려보면 외화자산은 대부분 한국은행이, 외화부채는 은행·민간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환율관리 책무를 공적 부문(한은)이 전담한 결과다. 과거 달러유입으로 원화가 강세 압력을 받으면 한은이 앞장서서 달러화를 매입했다. 덕분에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개선됐다. 이에 더해 은행과 기업은 보유 외화를 한은에 팔았다. 골치 아픈 환율 리스크를 한은에 떠맡겼다. 한은이 우리나라 외환리스크를 부담하는 ‘보험회사’인 것이다. 한은 자산의 86%가 외화자산인 게 우연이 아니다.
막대한 ‘외환보유액’은 기실 민간부문을 지나치게 보호해준 결과물일 수 있다. 자유변동환율제에서는 외환보유액 필요성이 작아진다. 호주 외환보유액은 430억달러, 미국 1400억달러, 영국 1800억달러로 우리보다 훨씬 적다.
이제 외환당국이 뒤로 물러설 때다. 다만 대외부문 거시건전성 장벽은 더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이런 바탕 아래 은행·수출대기업은 스스로 환리스크를 부담·관리하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민간부문이 ‘풀뿌리 환율 안정 세력’으로 변신해야 한다. 역외시장이 열린 상황에서 한은이 시장 개입을 지속한다면 반(反)시장적으로 비친다.
국제금융시장 신뢰를 잃으면 MSCI선진지수에 편입돼도 자본유출 사태가 올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등 MSCI선진지수 국가조차 체면 불고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린 바 있다.
돌멩이가 일으킨 충격(환율 변동)이 아무리 커도 우물(외환시장)이 넓고 깊으면 파장이 미미하다. 정부가 구상 중인 ‘외환거래 체계 전면 개편’ 방안이 숙제 해결의 큰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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