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공개(ICO)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코인 광풍’ 피해자 양산을 우려한 정부가 2017년 ‘금지령’을 내린 지 5년여 만이다. 코인 시장 침체에 가려 잊혀졌던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게임사 위메이드가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를 팔아 수천억원의 현금을 확보해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킨 게 계기가 됐다. 찬반 역시 여전히 팽팽하게 맞선다.
쌈짓돈?…유례 찾기 어려운 자금 조달
17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위메이드는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 위믹스를 이달부터 오는 3월까지 매월 1000만 개씩 매도할 계획이다. 비공개로 팔았던 게 문제가 되자 공개로 전환한 것이다.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 기준(17일 오후 2시)으로 2280억원 규모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해외에 위믹스를 매도해 위믹스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위메이드는 5000만 개(2000억~3000억원)를 매도해 각종 M&A에 활용했다. 선데이토즈를 1367억원에 사들였고, 800억원을 투자해 빗썸 운영사 비덴트의 2대 주주로 올랐다.
위메이드처럼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국내 최초 사례다. 위메이드는 현재 8억5000만 개의 위믹스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세로 따지면 6조원 이상이다. 재무제표상 현금성 자산(코인 현물은 무형자산으로 계상)이 800억원도 안 되는 회사에 갑자기 자산 6조원이 드러난 모양새다. 국내 상장사 중 시가총액 1위 기업인 크래프톤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는 규모다. 지난해 크래프톤 매출은 위메이드의 열 배가 넘는다.
위믹스와 위메이드 주식 가격이 출렁거리면서 불거진 ‘먹튀’ 논란과는 별개로, 국내 재무 및 투자(IR) 실무자들이 주목한 건 ‘기업 자금조달 방식’이다. 증시에 상장하는 기업공개(IPO)보다 자금 확보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대표는 “회사를 키워 향후 국내 증시에 상장할 계획을 세웠지만 최근에는 ICO로 투자 자금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중앙이 아닌 탈정부 화폐?
‘위메이드 방식’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처럼 돈을 찍어내는 ‘발권’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블록체인업계는 ‘탈중앙’을 거론하면서 암호화폐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위믹스는 특정 기업이 화폐 발행권을 틀어쥔 ‘탈정부 화폐’에 가깝다”며 “정부의 통화정책과 자본시장을 교란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 장치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위메이드는 영문 백서 32페이지에 매우 추상적으로 매도할 수 있다고만 밝혔다”며 “(위믹스 투자자는) 주식 투자자보다 보호를 못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가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부는 2017년 암호화폐 발행 주체가 부당한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내 ICO를 금지했다. 법적 근거는 없다. 정부 발표라는 행정 조치로만 ICO 금지가 유지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해외에서 암호화폐를 발행해 국내외 암호화폐거래소에 상장(위탁판매 형태)하는 게 이런 조치를 피하기 위한 우회전략이다.
위메이드가 촉발한 ICO 공론화
ICO는 거부할 수 없는 첨단 자금 조달 방식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게임,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자리잡은 블록체인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암호화폐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메이드 같은 게임업체가 돈 버는 게임, 이른바 ‘플레이 투 언(P2E)’ 사업에서 사용자들이 게임 아이템을 현금화할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암호화폐가 필요하다. 위메이드는 이날 NFT(대체불가능토큰) 게임 ‘실타래’에 투자하는 등 위믹스 게임 네트워크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컴투스, 네오위즈 등 다른 게임사들도 암호화폐를 발행하거나 발행한 암호화폐를 거래소에 상장할 계획이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암호화폐거래소의 상장 절차와 기준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한다는 전제 아래 ICO를 허용해야 한다”며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관련 시장 양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ICO 공론화가 불 붙을 기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4일 ‘K코인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우리나라가 디지털 자산 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첫 단계로 ICO 논의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주장했다.
김주완/이인혁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