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일이 50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지적·자폐성 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인에게 ‘투표 보조인’의 동행을 허용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참정권 보장을 위해 보조인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자기결정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대립하는 상황이다.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에 따르면 시각 또는 신체장애로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가족이나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 발달장애인은 당초 이동이나 손 사용에 어려움이 없다는 이유로 신체장애인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4년부터 발달장애인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투표 관리 매뉴얼을 수정해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2020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가 투표 관리 매뉴얼에서 발달장애인을 투표 보조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따라 당시 투표장 이곳저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투표 보조를 위해 온 사람들이 투표관리인의 판단에 따라 입장을 거부당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활동지원사 A씨는 “현장에 도착해서야 지침 변경을 알았다”며 “후보들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투표하고 나온 발달장애인이 많았다”고 말했다.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 보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0만 발달장애인도 대통령을 뽑고 싶다. 투표 보조를 지원하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혼자서 투표할 수 없는 사람에게 보조를 허용해 놓고, 현장 사무원이 허용 여부를 임의로 결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선관위에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편의 제공 방안을 마련하라고 작년 3월 주문한 바 있다. 정일권 사회복지사는 “발달장애인도 옆에서 정당과 공약 등 정보를 제공받고, 기표 시 손떨림 문제를 도와준다면 자기 의사에 따라 투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선관위는 투표인이 아니라 보조자의 선호에 따라 투표 방향이 결정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 관리 매뉴얼을 바꾼 것은 처음 의도와 달리 모든 발달장애인이 보조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장애 등록 여부나 등급과 관계없이 신체적 증상이 있다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다는 설명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 보조 허용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며 “사례 중심으로 투표관리인을 충분히 교육하고 있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은 선관위에 연락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오는 26일 대선에 활용할 투표 관리 매뉴얼을 공개할 계획이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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