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 부호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한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이 알리바바·텐센트 등 자국 빅테크 '군기잡기'에 나서면서 큰 손실을 본 손 회장이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평가다. “도대체 어떻게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하나”는 의문을 남겼던 쿠팡은 손 회장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3조5000억원을 투자한 쿠팡이 미국 증시 직행을 통해 전대미문의 상장 성공스토리를 썼기 때문이다. 최근엔 인공지능(AI) 핀테크 스타트업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교육 AI 솔루션 회사 '뤼이드' 등 성장 가능성이 큰 국내 스타트업에 과감하게 베팅하면서, 제2·제3의 쿠팡 만들기에 나선 상태다. 앞서 투자한 여행·숙박 플랫폼 '야놀자'도 올해 상장을 앞두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최소 수천억원 규모로 베팅을 한 뒤 전폭적인 측면 지원과 추가 투자를 진행, 유니콘(기업가치 1조 이상)을 넘어, 데카콘(기업가치 10조 이상), 헥토콘(기업가치 100조 이상)기업으로 키우는 전략을 쓰고 있다. 1000억원 이상의 돈을 한번에 넣으면서 투자규모 면에서 국내 벤처캐피탈(VC)과는 차원이 다른 게임을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면 최근 손 회장이 투자한 크래프트와 뤼이드가 상장에 성공할 경우 소프트뱅크가 손에 쥐는 돈을 얼마가 될까. 이를 알기 위해선 투자할 때 평가된 기업 밸류에이션(기업가치)를 알아야 한다.
우선 크래프트는 최근 소프트뱅크로부터 1억4600만달러(약 1746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투자 전 기업가치(프리 밸류)'를 4100억원으로 인정받았다. 이번 소프트뱅크 투자액을 더하면 '투자 후 기업가치(포스트 밸류)'가 약 5850억원 달한다. 따라서 소프트뱅크가 확보한 지분율은 약 30%라는 계산이 나온다. 소프트뱅크의 엑시트(Exit, 투자회수) 금액은 크래프트의 상장 후 시가총액에 의해 좌우된다. 향후 추가 투자없이 크래프트가 나스닥 직상장을 통해 헥테콘 달성에 성공할 경우 소프트뱅크는 투자금의 17배에 달하는 3조원을 거머쥘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최대주주는 50%를 보유한 김형식 대표고, 이번에 소프트뱅크가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크래프트는 작년 5월 KDB산업은행 등으로부터 150억원을 유치할 당시 기업가치가 1750억원으로 책정됐는데, 7개월여 만에 기업가치가 3배 이상 뛴 셈이다.
소프트뱅크는 크래프트의 성장 가능성과 소프트뱅크와의 전략적 연계 가능성을 고려해 본사가 직접 투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설립된 크래프트는 포트폴리오 시스템과 주문집행 시스템(AXE) 등을 개발해 증권사와 금융사 등에 서비스한다. 독자적인 딥러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초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주는 게 특징이다. 크래프트는 AI를 활용해 상장지수펀드(ETF)도 결성해 운용하고 있다. 손 회장은 크래프트와 소프트뱅크 본사의 시너지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상장 주식 포트폴리오 운용에도 크래프트의 AI 모델을 활용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뤼이드는 국내에서 창업해 AI를 활용한 토익 교육 플랫폼 ‘산타토익’으로 이름을 알린 회사다. 이 회사는 AI를 통해 인강(인터넷강의)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습자가 혼자 앱으로 공부할 때 어떤 환경에서 공부를 멈추는지 분석해 이탈률을 낮추고, 집중도를 높이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학습자마다 오답의 원인이 다양하다는 점을 파고들어, 학습자의 실력 증대에 따라 어떤 항목 공부를 줄이고 늘릴지 동선을 짜주기도 한다. 산타토익의 가입자는 이미 200만 명을 넘어섰다. 뤼이드는 사업을 B2B로도 확장하고 있다. 출제자 입장에서 학습자의 오답 가능성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면서다. 뤼이드는 교육기업을 상대로 한 비지니스에서 더 큰 매출을 내고 있다.
뤼이드의 장 대표는 100조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현재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인 점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쿠팡처럼 더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나스닥 직행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국내보다 미국이 사업 확장과 투자 유치에 유리하다고 판단도 깔려 있다. 미국 법인 설립 예정지는 미국에서 규제 강도가 낮은 델라웨어주나 투자 유치와 인력 확보에 유리한 실리콘밸리 등이 거론된다. 본사 이전은 뤼이드 주주들이 가진 국내법인 주식을 미국 신규 법인에 출자하거나, 이미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자회사 '뤼이드랩스'를 주식 교환을 통해 본사로 만드는 방식 등이 가능하다. 뤼이드는 법인 전환 이후 사업 영토를 넓혀 글로벌 AI 교육 산업의 리더로 성장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쿠팡의 보인 지금까지의 성공은 가장 빠르고 편한 배송을 필두로 한 쿠팡이라는 기업의 혁신성이 밑바탕이 됐다. 여기에 더해 손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상장 전략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공스토리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상장 과정에서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구글과 네이버를 등치시키고, 쿠팡과 아마존을 등치시키는 전략은 미국 자본시장을 설득시켰다. 아마존이 구글보다 시총이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쿠팡도 네이버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게 쿠팡의 주요 설득 포인트였던 것이다. 아마존의 성공을 본 미국 투자자들은 기꺼이 쿠팡의 손을 들어줬다.
이같은 성공신화를 써가고 있는 손 회장과 소프트뱅크에게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손 회장 표현에 따르면 '겨울 폭풍' 속에 있다. 손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는 디디추싱·알리바바 등 중국 IT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투자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2019년 위워크 상장실패와 우버 실적 악화로 큰 손실을 본 뒤 2020년 쿠팡과 도어대시 상장으로 만회했다. 하지만 2021년 실적은 또다시 롤러코스터처럼 고꾸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손 회장은 올해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난 15개년 계획을 세우고 매주 미세조정을 하고 있다"며 단기 손실에 개의치 않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자신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팔지 고민하는 투자가가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자본가라는 점에서다. 손 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소프트뱅크가 투자하는 회사 중 이익을 내는 곳은 3~5%밖에 없다"며 "매일매일이 봄은 분명 아니지만 늘 도전하며 조금은 조마조마하고 두근두근거리는 정도가 드라마도 있고 즐겁다고 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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