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가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새로운 반도체 패키징 공장 설립에 들어간 데다, 이미 글로벌 고객사들도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가총액은 중국 텐센트를 제치고 아시아 1위에 올라섰다.
대만 언론 디지타임스는 지난 24일 TSMC가 대만 남부지역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새로 짓는다고 보도했다. 해당 공장은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공정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TSMC가 패키징 부문에서도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이어나가면서 삼성전자와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 사업에 가장 공을 들이는 곳은 TSMC다.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공장은 TSMC의 대만 내 여섯번째 패키징 생산라인이 된다. TSMC는 현재 대만 북부의 신추 사이언스 파크(HSP), 센트럴 타이완 사이언스 파크(TSP), 남대만 사이언스 파크(STSP), 롱튼에 위치한 4개의 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다섯 번째 패키징 팹은 현재 대만 북부에 있는 천안에 건설 중이다. 부지도 기존 공장들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TSMC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뿐 아니라 패키징 공장까지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은 자동차 스마트폰 PC 서버용반도체 등 장기 고객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고객사가 그만큼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애플, AMD, 엔비디아, 미디어텍 등 TSMC의 고객 중 상당수가 패키징 기술로 칩을 제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패키징 기술강국인 일본과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TSMC는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 소재한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연구기관인 '산업·기술 종합 연구소' 내부에 370억엔을 투자해 R&D 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일본 정부가 절반 정도인 190억엔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시설은 반도체 패키징 기술 연구에 주력할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패키징 기판 세계 1위인 일본 이비덴과의 연대도 강화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 관계자는 “이비덴이 없었다면 TSMC 유치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만큼 패키징 기술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 된다.
인텔은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반도체 패키징 생산라인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레이시아 투자진흥청(MIDA)은 인텔이 말레이시아 페낭 지역에 300억 링깃(약 8조4000억원)을 들여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실제 지난해 12월 CEO 취임 이후 처음으로 대만과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인텔은 이탈리아와도 최대 80억유로(약 10조7652억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이 향후 10년간 유럽에 800억유로의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금액의 10%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I-Cube4를 패키지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술로 평가한다. 이전에도 다른 종류의 반도체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으려는 시도는 많았다. 하지만 면적이 커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크기가 제각각인 반도체를 인쇄회로기판(PCB)에 붙일 때 필요한 미세회로 기판인 인터포저가 문제였다. 인터포저가 차지하는 공간이 커지다 보니 변형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게 힘들었다.
삼성전자는 I-Cube4에 초미세 배선을 활용해 크기를 최소화한 실리콘 인터포저를 적용했다. 반도체 칩을 감싸 고정하는 몰딩도 쓰지 않았다. 몰딩을 사용하면 제품 안정성이 높아지지만 크기가 커지고 열을 방출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100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수준의 얇은 인터포저가 변형되지 않고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반도체 사업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총동원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패키징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술 개발을 하고 있긴하지만 TSMC와 인텔의 투자에는 못미친다는 분석이다. 실제 전세계 반도체 패키징 시장은 지난 2015년부터 연평균 4.84% 성장해 오는 2024년 849억 달러(약 9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삼성전자도 점유율 확대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반도체 패키징 투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패키징 관련 기술인력들에게 충분한 보상방안도 고민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다만 생산라인에 대한 투자가 같이 이어져야 시장에서 점유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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