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일제히 올해 고(高)유가를 전망하고 있다. 공급 부족발(發) 국제유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공급 부족 상황에선 작은 이벤트에도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게 IB들의 판단이다.
29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유가는 지난해 내내 우상향 기조를 유지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을 큰 폭 웃돌았다. 올 들어서도 상승 폭을 확대하면서 지난해 고점을 경신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무력 충돌 우려,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 등의 지정학적 불안이 커진 탓이다.
세계 원유 수급은 2020년 하루 206만배럴 공급 초과에서 지난해 137만배럴 공급 부족으로 급전환했다. 공급 부족 규모는 2007년 이후 최대 폭이다. 수요는 5.5% 증가한 데 비해 공급은 오펙 플러스(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의 협의체)의 생산통제 정책과 석유 기업들의 탈탄소 움직임에 따른 구조적인 요인으로 1.7%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제금융센터는 "9개 글로벌 주요 IB들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전망치의 중간값을 보면, 올 1분기 78달러, 2분기 76달러, 3분기 74달러, 4분기 71달러"라며 "올해 평균 유가는 전년 대비 소폭 오르고 상반기보단 하반기가 낮은 상고하저 형태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연간 기준 IB들의 WTI 전망치 중간값은 75달러다. 지난해엔 68달러였다.
IB들은 "글로벌 친환경 기조 강화로 투자가 감소하고 생산능력이 축소될 수 있다"며 "지정학적 불안 요인도 있고 통상 원유 등 실물자산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가치가 더욱 상승하기 때문에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판단했다.
김희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완전한 경제 활동 재개가 지연되고 미 통화정책 정상화, 이란 핵 협상 타결 등이 맞물리면 저유가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면서도 "주요 IB들과 여러 변수를 종합해보면 올해는 공급 측면의 불확실성이 상당해 고유가 시나리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공급 부족 상황에선 소규모 생산 차질 등 중요도가 낮은 이벤트에도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일시적인 유가 급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고유가는 농산물과 금속 등 다른 원자재 가격에도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전반적인 물가 불안 심리를 높이고 기업들의 원가 부담을 늘려 경제 활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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