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서 인수인계 없이 컴퓨터 포맷하면…대법 "업무방해"

입력 2022-01-31 11:23   수정 2022-01-31 11:24


퇴사를 하며 후임자에게 인수인계 없이 업무용 컴퓨터 자료를 삭제하는 행위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한 제조업체에 근무하던 A씨 등은 대표이사에게 불만을 품고 퇴사를 결심했다. 이들은 자신의 컴퓨터에 있던 자료를 회사의 공용폴더로 백업하지 않은 채 삭제했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도 하지 않은 채 퇴사했다. 이 제조업체에는 매월 컴퓨터 자료를 회사 공용폴더에 백업하는 내규가 있었고, A씨 등이 삭제한 자료에는 개발 업무나 거래처, 자재 구매 등 중요한 내용이 담겼다.

대법원은 "A씨 등의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피해 회사의 경영 업무가 방해됐거나 방해될 위험이 발생했다"며 "적어도 미필적으로는 업무방해의 범의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업무방해죄에서의 '위력'에 대해 대법원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거나 혼란하게 할 만한 일체의 유형·무형의 세력으로 폭행·협박은 물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도 이헤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또 "사람의 자유의사나 행동을 제압할 만한 일정한 물적 상태를 만들어 정상적인 업무수행 활동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행위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A씨 등은 퇴사 뒤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이전에 다니던 제조업체 이름에 영문 철자 하나만 추가한 동종 업계 업체였다. 이들은 매우 유사한 영업표지를 제작해 경쟁에 나섰다.

1심과 2심은 "피해 회사의 영업 표지와 매우 유사한 영업 표지를 사용했고 이 가운데 3명은 업무 관련 자료를 모두 삭제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며 퇴사자 모두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렸다.

A씨 등을 이끌고 퇴사하며 범행을 주도한 B씨에 대해서는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는 등 자숙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돌리려 했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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