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V 역할, 도심형에서 완전 탈피
지난 201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던 BMW i3 글로벌 런칭 행사에 참석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내용이 전기차의 핵심은 주행거리가 아니라 IT 기반의 연결성이라는 설명이었다. 충전에 불편함이 없도록 IT 기술로 충전율, 주행가능거리, 충전기 위치, 연결교통편 등을 망라하면 작은 용량의 배터리만 가지고도 도심에서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그래서 BMW는 i3의 운행 지역을 도심으로 한정하며 충전 네트워크를 확장해갔다. i3 등장 이전 수소내연기관 실험으로 다양한 에너지 사용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수소보다 출발은 배터리 전기가 우선이었고 그 결과물이 i3 BEV였다.
그런데 i3 개발 과정에서 BMW의 최대 고민은 프리미엄 이미지의 제품 투영 방안이었다. 육상 이동 수단에 새롭게 들어오는 전기 동력은 제조사마다 차별화를 이루기 쉽지 않은 분야였던 탓이다. 내연기관은 출력, 토크, 내구성 등에서 얼마든지 기술력을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와 연결할 수 있지만 전기 동력의 핵심은 배터리와 전기모터이고, 그 중에서도 배터리는 BMW가 직접 다루는 품목이 아니어서 차별화 방안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BMW가 선택한 것은 1회 충전 후 주행거리가 아니라 ㎾h당 주행 가능한 거리, 즉 효율이었다. 도심에 특화된 BEV는 사용자의 이동 거리가 짧은 만큼 효율에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효율을 위해 철 대신 튼튼하되 가벼운 탄소 섬유 기반의 복합 패널 소재를 선택했다. 당연히 철 대비 비싸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여서 제품에 원가를 과감하게 적용했다. 실제 당시 현장 참석자들에게 회사측은 꼭 차체를 직접 들어보라는 강력한(?)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성인 두 명이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주행거리 대응 방안도 언제나 열어놨다. 소비자 선택은 언제든 바뀔 수 있어서다. 초기 22㎾h에 불과했던 배터리 용량을 주행거리 불만이 나올 때마다 27.2㎾h, 37.9㎾h 등으로 키워나간 게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경쟁자들이 전기차를 내놓을 때 '효율'보다 '1회 주행거리'에 주력하는 경향을 나타냈고 구매자 또한 '효율'은 외면한 채 오로지 주행거리만 따지기 시작하자 i3의 입지도 점차 좁아졌다. 제품 컨셉트는 도심형 BEV 성격에 정확히 맞추었지만 구매 흐름은 오로지 주행거리에 집중되는 현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i3 등장 초반 국내 기업 또한 BEV의 운행 지역으로 도심을 특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이유로 BMW는 i3를 결국 단종하기로 했다. 오는 7월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 내 i3 생산 라인 가동을 멈추고 BMW 내 BEV 역할은 iX3 및 미니에 넘겼다. 누적 25만대 가량의 흔적과 BEV 시장 개척자의 명성을 남긴 채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BMW가 i3를 통해 얻은 전략적 교훈이다. 2014년부터 BEV 트렌드 부문에서 쌓인 데이터는 BMW의 미래 설정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 구매자의 특성과 이용 패턴, 그리고 충전 경험 등 동력 전환 시대에 필요한 소비자 행동을 선제적으로 파악했다는 점은 i3가 만들어준 자산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주목하는 주행거리는 80㎾h 배터리 적용으로 염려를 없앴다. 또한 각 나라에서 사용 가능한 연결성 강화 기능도 높여 사용자 편의성을 크게 개선했다.
그럼에도 BMW는 'BEV'를 여러 이동 수단 가운데 전기가 필요한 것으로만 정의할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최대 200마력의 승용차를 만들어 판매할 때 소비자가 보조금 없이 가솔린, 디젤, 전기, HEV, PHEV, FCV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전환점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지금의 전기차 확산도 어디까지나 보조금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주목한다. 또한 소비자들의 1회 충전 후 주행거리 집착(?)도 충전 네트워크 확장 속도에 따라 '효율' 쪽으로 옮겨가고, ㎾h당 에너지 비용도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굳이 한쪽으로 편중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BMW의 i3 단종은 BEV 전략의 숨고르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BEV는 대단히 급한 과제가 아니라 미래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과제여서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2035년 내연기관 단종 선언을 두고도 시장에선 내연기관 100% 제거로 해석하지만 실제는 내연기관으로만 구동하는 자동차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고 HEV와 PHEV는 유지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친환경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든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이지 특정 에너지 사용에 주력하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권용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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