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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죽지 않으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끼지. 영원한 시간 속에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지구의 중력을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부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 지금….”
천사의 능력을 상실한 다미엘처럼 인간화된 천사를 묘사한 명화가 있다. 핀란드의 국민 화가 후고 짐베르크(1873~1917)의 걸작 ‘부상 당한 천사’다.
이 작품은 1903년 핀란드 국립아테네움미술관 전시회에서 선보였을 때 큰 성공을 거뒀고 오늘날에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06년 아테네움미술관에서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국가 그림’으로도 선정됐다. 수수께끼 같은 그림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핀란드인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을까? 작품을 감상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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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분위기도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늘은 회색빛이고 그 아래 눈 덮인 산과 차가운 발트해의 핀란드만(灣)이 침울하고 슬픈 분위기를 더한다. 두 소년은 가난하지만 동정심이 많은 성품을 지닌 것 같다. 검은 모자에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은 고개를 숙여 땅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럽게 길을 인도한다. 갈색 상의에 짙은 청색 바지를 입은 소년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관객을 바라본다. 두 소년의 의복이나 표정에서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착한 심성이 느껴진다. 황량한 들판에는 군데군데 흰색 봄꽃이 피었고 천사도 오른손에 똑같은 꽃을 쥐고 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개울가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버드나무에는 새잎이 돋았다. 꽃과 버드나무는 치유와 부활, 재생을 상징한다. 짐베르크는 그림의 의미에 대해서는 설명을 거부했지만 장소를 통해 작품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두 소년이 걷고 있는 길은 헬싱키 중심부에 있는 대규모 공원인 엘레인타르하(동물원)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다. 당시 엘레인타르하공원은 노동자 계급의 여가 활동을 위한 장소와 시설로 서민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공원에는 양로원과 병원, 시각장애 소녀를 위한 학교와 기숙사 등 많은 자선기관이 있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공원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두 소년이 자선기관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부상 당한 천사를 치료하기 위해 데려가고 있다고 추정한다.
이런 해석을 참고하면 이 작품이 핀란드 국가 그림으로 선정된 배경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핀란드는 수세기 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오랜 전쟁으로 인해 국민이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끔찍한 학살과 고문의 역사는 핀란드인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다. 부상 당한 천사는 온갖 고난과 박해를 받은 핀란드 민족성을, 순백의 의복과 날개는 인간의 잔인한 폭력으로 희생된 무고한 영혼들을 상징한다. 그런 한편으로 이 그림에는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희망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 들판에 핀 꽃과 천사가 손에 쥔 꽃은 평화와 화합을 갈망하는 인류애를 상징한다.
짐베르크 자신이 이 그림을 통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개인사도 작품의 명성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짐베르크는 뇌수막염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길고도 추운 겨울 내내 중병을 앓다가 회복 중이었을 때 이 그림을 그리며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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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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