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신용불량자 대출도 금융"이라는 경기도

입력 2022-02-03 17:13   수정 2022-02-04 00:07

지난달 27일 경기도청 북부청사 상황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친정인 이곳에서 ‘청년 기본금융’ 사업 예비설명회가 열렸다. 경기도는 금융회사들을 불러모아 도내 청년이면 누구나 1인당 500만원을 연 3% 안팎의 낮은 금리로 10년간 빌릴 수 있는 ‘기본대출’을 올해부터 5년 동안 3조원 규모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이 후보가 경기지사 시절부터 내건 기본대출 공약의 시범사업 성격을 갖고 있다. 이날 설명회에는 시중·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에 이르기까지 총 30여 명의 실무자가 참석했다. 금융권에서는 “불참했다가 나중에 찍히기라도 하면 어쩌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한다.

경기도는 시행 첫해인 올해에만 협약 은행의 재원으로 20만 명에게 1조원의 기본대출을 내주겠다는 구상이다. 경기도에 주민등록을 둔 만 34세 이하 청년이라면 ‘누구나’ 돈을 빌릴 수 있다. 소득·자산·신용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신용불량자도, 개인회생자도 예외가 돼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대상을 전 국민으로 넓히고 대출 가능액을 1000만원으로 늘리면 기본대출 공약이 된다.

기본대출은 상대방이 돈을 제대로 갚을 능력, 즉 신용도에 따라 이자를 받고 자금을 융통해준다는 금융 상식에 정면으로 반한다. 설명회에 참석한 한 금융사 직원이 “누구나 대출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금융이 아니다. 저신용·저소득층을 위한 지원은 복지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하자 경기도 관계자는 “우리는 이것(기본대출)도 금융이라고 생각한다”며 “부실이 발생하는 것도 금융의 한 부분으로 생각해달라”고 했다.

부실을 막는 것은 금융회사의 사명이다. 예금자가 맡긴 돈으로 대출해주는 은행은 부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부실이 발생해도 예금자에게 돌려줄 돈에는 피해가 없도록 할 의무를 진다. 은행이 신용을 철저히 평가해 금리를 매기는 게 중요한 이유다.

정부가 100% 보증을 선다고 해도 해결책은 아니다. 저신용자 대출이 늘면 은행의 건전성이 나빠지고 부실도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무조건 대출’이 청년들에게 또 다른 굴레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가 없고 상환 능력이 불확실한 청년에게 쉬운 대출은 빚 부담만 늘리는 길이 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서민금융 공급은 차입자가 다시 고금리 대출을 받아 신용점수가 낮아지는 현상을 막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일부 은행은 유력 대선 후보의 공약이란 사실만으로 진지하게 참여를 고민하는 분위기다. 포퓰리즘과 관치로 멍든 한국 금융이 ‘기본’도 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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