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능 초토화" 美 초강수에…국내 대기업들 비상 걸렸다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2-02-05 15:00   수정 2022-03-06 00:01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전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이 대(對) 러시아 반도체 제재 카드를 꺼냈다. 미중 무역 갈등 당시 반도체 정보 공개 이슈로 홍역을 치른 삼성전자도 또다시 복잡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러시아에 핵심 반도체 공급 끊을 것"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가져올 경제적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이어 반도체와 금융 등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언급하면서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Axios)'는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침공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미 행정부는) 러시아에 핵심 반도체 공급을 끊을 것"이라며 "전례 없는 광범위한 제재"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압박의 일환으로, 액시오스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 생산 반도체는 물론 자국 부품, 도구,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적용한 해외 기업 생산 반도체에도 제약을 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매체는 "반도체 제조 공급망에서 미국 기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면서 "러시아가 입을 타격은 충격적일 수 있다"고 했다.

미국 투자회사 '레이먼드 제임스'(Raymond James) 소속 에드 밀스(Ed Mills) 정책 애널리스트는 악시오스에 "반도체는 현대전의 새로운 무기"라며 "반도체 접근을 완전히 막을 수 있다면 국가로서의 기능은 초토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제재의 범위가 얼마나 넓을지 알 수 없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 인공지능(AI)이나 양자 컴퓨터 같은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러시아가 이 분야의 발전을 원한다면 우리와 우리의 동맹국들, 파트너들이 독점적으로 생산 가능한 기술과 제품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제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의 생산 능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한국에도 직·간접 영향…대책 마련 부심
미국의 반도체 규제 전략이 구체화되면서 전자제품을 주력 산업으로 삼는 한국도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재의 범위와 강도에 따라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 갈등 국면에서 세계 안보의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반도체 패권을 지키기 위해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에게 주요 정보 제출을 압박한 전례가 있다.

당시 미 정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에게 최근 3년간 제품별 매출액과 재고량, 유통 관련 정보 등 구체적 현황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세부 사항을 보면 "회사의 주요 반도체 제품에 대해 각 제품의 2019년 리드타임(물품 발주 때부터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간)과 현재의 리드타임을 전체 및 각 공정별로 추정하라", "각 제품에 대해 톱3 고객사와 각 고객사에 대한 판매비중을 기술하라" 등 회사의 최고 영업기밀에 속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사실상 반도체 공급망 주요 정보를 미국이 관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중국과의 거래를 철저히 차단시키고 글로벌 기업들을 미국의 지배력 밑에 두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미국의 초강수에 삼성전자는 물론 SK하이닉스와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줄줄이 정보를 제공하며 미 정부의 뜻에 따랐다. 이후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내 기업들이 또 안보 리스크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 제재 시작될 경우 한국 2차, 3차 피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은 지난 19일엔 미 반도체산업협회(SIA) 측에 전화를 걸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글로벌 전자제품 공급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 차단 등 새로운 대러 수출 제한을 준비하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SIA의 한 관계자는 "NSC는 우크라이나 상황이 이례적이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침공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대성을 직설적이고 엄중한 표현으로 전달해왔다"며 "NSC는 정부가 모든 옵션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SIA는 이란과 북한처럼 러시아에 대한 광범위한 수출 통제, 중국 화웨이에 적용한 것처럼 외국산 제품 선적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의 권한을 대폭 확대한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대러 수출 제재가 시행되면 러시아는 스마트폰과 주요 항공·자동차 부품 등을 수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지난 8일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 침공 시 미국은 곧바로 러시아 최대 은행들을 '국제 은행 간 통신망'(SWIFT)에서 퇴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은행들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 200개국과 거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WIFT에서 퇴출되면 이 은행과 거래하는 은행들도 제재 대상이 돼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에 수출하고도 수출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NYT는 "미 상무부는 휴대전화, 노트북부터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소비재 수출을 통제할 수 있다"며 "미국 제품뿐 아니라 미국산 반도체와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한국, 유럽 등 외국산 제품도 포함된다"고 했다. 특히 한국산 제품을 처음으로 꼭 짚어 언급해 국내 기업들의 주시하고 있다. 러시아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휴대전화, 세탁기, 냉장고 같은 주요 가전 분야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도 러시아 자동차 시장 판매량 1위부터 5위까지 싹쓸이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금융 규제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러시아 현지에 국내 기업들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면 한국의 2차, 3차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에서 TV 공장을 운영 중으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자산 규모는 1조2448억원 수준이다. 현지 판매법인(1조1245억원)과 연구개발(R&D) 조직(455억원), 우크라이나 판매법인(2743억원) 등을 포함하면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자산은 2조7000억원 수준이다.

LG전자도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주로 내수용이다. LG전자의 러시아 등 기타 지역 매출 비중(2020년 기준)은 2.9% 수준으로 규모로는 1조6634억원이다. 현지 KOTRA 무역관은 "경제 제재가 현실화되면 우리나라의 가전, 휴대폰, 자동차 및 부품 수출이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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