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지정학적 위기까지 더해지면서 국제 유가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시장에서 제기됐던 배럴당 100달러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미국 월가에선 배럴당 120달러 전망까지 나오는 가운데 국제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WTI와 브렌트유 시세는 7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원유 수요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는 반면 공급은 막혀 있어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지난 2일 정례회의에서 하루 40만 배럴씩 증산하는 기조를 다음달에도 유지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 OPEC+ 소속 국가 상당수가 원유 생산량을 늘릴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원유 수요 증대에 앞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와중에 지정학적 위기까지 더해졌다. OPEC+에서 두 번째로 원유 생산량이 많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여전해서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러시아산 원유 수출이 급감해 공급 충격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예멘 반군의 드론(무인기) 공격이 이어지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도 높아졌다.
탄소중립 기조도 중장기적으로 국제 유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에너지 회사들에 원유, 셰일오일·가스 생산을 줄이고 친환경에너지 중심으로 사업을 바꾸라는 압력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반론도 있다. 씨티그룹은 이르면 올해 2분기에 세계 원유 재고량이 늘어나 유가 상승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파가 잦아들면 미국 텍사스주 퍼미안분지에서 셰일오일·가스 및 원유 생산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앞서 엑슨모빌은 퍼미안분지에서의 올해 에너지 생산량을 25%, 셰브런은 10%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탄소중립 압박이 부담이긴 하지만 국제 유가가 상승하는 와중에 이익을 늘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제 유가 상승은 세계 각국의 골칫거리인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 휘발유 난방유 등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미 중앙은행(Fed)은 다음달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해 12월에 이어 이달에도 금리를 올렸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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