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핵산검사·9시간 대기…통제의 끝판왕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참관기]

입력 2022-02-06 12:20   수정 2022-02-06 13:11


지난 4일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은 중국의 '통제식 관리'를 제대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강력한 통제를 기반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특색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전세계에 알린다는 계획이다.

이번 올림픽은 개막식부터 모든 경기의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는다. 정부가 선별한 관중들만 입장할 수 있다. 개막식 참관자들은 사전 2회, 사후 2회 등 총 4회의 코로나19 핵산검사를 받고 음성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또 중국 정부가 인정한 백신(자국 백신) 접종 사실도 증명해야 한다.

외신기자들은 개막식 당일 오전 11시에 베이징 중심 둥청구의 프레스센터에 집결했다. 검사 결과 등을 확인한 후 탑승한 버스는 베이징 동쪽 차오양구의 차오양공원으로 이동했다. 개막식이 열리는 북쪽 국립경기장에선 오히려 멀어졌다.

차오양공원엔 대규모 보안검색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검색대를 통과할 때 소지할 수 있는 물품은 휴대폰과 보조배터리 뿐. 취재를 위한 노트북이나 카메라는 물론 음식, 핫팩, 담배와 라이터 등 개인 소지품은 모두 타고 온 버스에 두고 내려야 했다. 주최 측은 "경기장에서 방한도구를 제공한다"고 안내했다.


차오양공원 주차장에는 수십 대의 버스가 새로운 버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버스 앞 창문에는 '폐쇄루프 밖 취재진' 외에도 '국유기업' '베이징위생관리위원회' '베이징교육위원회' 등의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베이징 정부가 공기업과 공공기관, 학교 등에서 인원을 선별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새 버스에 탑승하자 주최 측은 다시 한 번 신분을 확인한 뒤 출입카드와 마스크, 음식을 나눠줬다. 마스크는 붉은색과 푸른색 2종이었다. 주최 측은 개인 마스크를 쓴 사람에게 "나눠 드린 마스크를 착용해 달라"고 반복해서 요구했다.

차오양공원에서 대기하는 동안 갈 수 있는 곳은 버스와 화장실 정도였다. 일부 특파원들은 "화장실을 보내주는 게 어디냐. 이 정도면 중국 정부가 자유를 많이 주는 것"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동과 검사, 대기 등을 반복한 뒤 올림픽공원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아직 개막식 시작까지 4시간이 더 남았지만 몸과 마음은 슬슬 지쳐갔다. 선별 인원들이 타고 온 버스는 총 340대였다. 이렇게 많은 버스가 한 번에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은 국립경기장에서 멀 수 밖에 없었다. 하차 장소에서 국립경기장까지 1시간 이상을 걸어가야 했다. 경기장 앞에서 또 2차례 신분 확인을 한 뒤 배정된 자석에 앉으니 오후 6시였다.

경기장에서도 배정받은 자리 외 지역으로의 이동은 제한됐다. 구역마다 자원봉사자과 보안요원들이 배치돼 입장권 번호를 확인했다. 경기장 내에도 대회 참가자들을 외부인과 차단하는 '폐쇄 루프'가 마련됐다. 외부인은 폐쇄 루프 근처만 가도 제지당했다.

개막식 행사는 10시30분께 끝났다. 하지만 폐쇄 루프 인원들이 경기장을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퇴장할 수 없었다. 퇴장 후에도 버스까지 다시 1시간을 걸어갔다. 차오양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 날 새벽 1시. 수천 명이 한꺼번에 내리고 택시를 잡느라 일대 교통이 마비됐다.

기자는 베이징에 1년 넘게 살았다. 그 동안 아파트단지나 마을을 통째로 봉쇄하는 등의 코로나19 방역 조치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하지만 오후 8시에 시작하는 개막식에 가기 위해 오전 11시부터 집결해야 하는 식의 통제는 여전히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동행한 중국 사람들의 표정은 외국인들과는 달랐다.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한다는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강력한 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방 국가들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이런 통제가 가져온 성과다. 중국은 특히 봉쇄식 관리로 코로나19 확산을 빠르게 차단했다는 성과를 강조하며, 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서방 국가들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관리와 통제에 기반하는 중국의 체제가 다른 영역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중국의 주장이다.

중국의 '특색 사회주의'가 빈곤 탈출과 코로나19 차단 등의 성과를 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올림픽 성공 개최'라는 명분을 앞세워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체제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경제 어젠다인 '공동 부유'가 부상할수록 중국 내에서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은 제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개막식 당일 경기장 외부에선 보안요원이 네덜란드 기자의 보도 생중계를 무단으로 제지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중국 측의 설명대로 그 기자의 보도가 통제구역 내에서 이뤄졌을 수 있다. 하지만 제지 과정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알려진 것은 중국에게도 분명히 타격일 수 밖에 없다. 보안요원은 이런 전략적인 고려보다는 통제구역에서의 보도 차단을 우선했을 것이다. 과도한 통제가 낳은 경직성의 결과로 보인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을 대외적으로 체제 우월성을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기대하는 더 큰 효과는 국내 선전이라는 분석이 많다. 세계적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모습을 공산당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의도가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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