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K-의료 경험하러 온 아랍인들의 친구, 의료통역사 이진주

입력 2022-02-08 14:56  

K-의료 경험하러 온 아랍인들의 친구, 의료통역사 이진주
“어린 시절부터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일하는 어른들이 멋있어 보였어요. 막연하게나마 나중에 커서 외국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져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새 의료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죠.(웃음)”

외국인 환자 유치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 하이메디의 이진주 의료통역사(30)는 고교 시절 사촌언니의 추천으로 아랍어를 전공으로 택했다. 이후 정이 많은 아랍권의 문화에 푹 빠져 아랍 지역 환자들의 국내 방문을 돕는 의료통역사라는 직업까지 갖게 됐다. 아랍인들의 깊은 눈망울을 닮은 이 씨를 만나 의료통역사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의료통역사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의료적 소통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훨씬 더 다양한 일을 한다. 외국인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서부터 진료를 마치고 나갈 때까지 함께 하는 직업이다. 물론 단순히 통역만 하는 의료통역사도 있지만, 대개는 문진표 작성부터 수납, 검사 동의서 작성, 진료실 통역, 검사, 입·퇴원 수속 등 병원에서 환자들이 해야 할 일 전반을 맡아서 하고 있다. 낯선 타국의 병원에 온 외국인들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하이메디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나.
“하이메디는 외국인 환자들이 한국의 의료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이다. 현재 중동, 몽골, 러시아 등의 환자를 유치하는데 중동 환자들을 대상으로 의료 통역 서비스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의료 통역뿐만 아니라 원격진료 서비스 통역에도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한국에 오지 못하는 중동 환자들이 비대면 화상 플랫폼을 통해 1차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있다.”
아랍인들 위한 유튜브 채널 개설, 7개월 만에 구독자 10만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로 외국인 환자가 급격히 줄었다. 회사에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줘 시작하게 됐다. 채널명이 ‘hikuri’다. 구독자 99%가 중동 분들이다. 2020년 7월에 개설해 7개월 만에 구독자가 10만명이 됐다. 현재는 15만명을 넘었다.”

-유튜브에는 어떤 영상을 올리나.
“처음엔 중동 음식이나 음악, 뮤직비디오를 본 한국 사람들의 반응을 담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러다 한 에피소드가 100만 뷰를 찍으면서 급성장하게 됐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업로드하면서 운영 중이다.”

-채널을 운영하다 보면 기억에 남는 댓글도 있을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이집트 등 아랍권 나라에서 구독을 많이 하는데, ‘아랍을 좋아해 줘서 고마워’, ‘한국 문화를 알고 싶었는데 알려줘서 고마워’, ‘한국에 가 보고 싶어’ 등의 댓글을 보면 뿌듯하다.”

-의료통역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2017년 하이메디에 입사했다. 당시 맡은 업무는 중동에서 온 환자들에게 컨시어지(concierge) 서비스를 제공하고 통역을 하는 일이었다. 일하다 보니 의료 통역에도 관심이 생겼다. 지금은 경력을 쌓아 아랍어 의료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의료통역사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2015년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의료통역사 예비 양성 과정에 참여했다. 또 2019년 아랍어 의료 통역 전문가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는 예비 과정은 진행하지 않고 아랍어 의료 통역 전문가 과정만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면접 후 합격자에 한해 과정을 들을 수 있고, 언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병원 시스템, 의료 법률, 문화, 진료과별 의학 상식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전반적인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매주 토요일 8시간씩 6개월간 출석해야 하고, 영어 의료 용어 시험, 아랍어 필기 및 회화 시험을 통과해야 수료할 수 있다.”

-아랍어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린 시절부터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일하는 어른들이 멋있어 보였다. 막연하게나마 나중에 커서 외국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져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일본에 살던 사촌 언니를 따라 일본어를 전공하려고 했는데, 당시 한창 중동이 오일 머니로 뉴스에 많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희소성이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사촌 언니의 추천에 따라 아랍어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시리아, 요르단 어학연수를 계기로 아랍권 문화에 푹 빠져”
“K-POP 영향으로 한국인들 현지에서 인기”
-희소성이 있는 언어라 배우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공부했나.
“대학에 입학한 해인 2010년 시리아, 2014년 요르단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중간에 2012년 바레인에 있는 한국 기업에서 잠시 일하면서 중동 생활이 나와 잘 맞는다는 걸 알았다.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아랍인들이 의외로 정이 많다. 특히 당시엔 K-POP이 뜨고 있는 시기여서 한국인들이 인기가 많았다. 아랍인들이 친구로 지내자며 잘 대해 줘 더 호감이 컸던 것 같다.(웃음)”

-의료통역사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의료통역사는 환자와 보호자를 직접 만나 일하는 직업이라 이 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것을 ‘라포 형성(Rapport building)’이라고 하는데, ‘라포’의 사전적 의미는 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 관계다. 보통 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을 ‘라포를 형성한다’라고 한다. 통역사 역시 환자나 가족과의 라포가 형성되면 문제가 발생해도 쉽게 해결된다.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사교성이 필요하다. 사교성은 의료통역사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무엇보다 언어가 중요하다. 사전에 나오는 단어가 아니라 그들이 실제 쓰는 단어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스테로이드를 많이 쓰는데 아랍에서는 코르티졸이라는 말을 쓴다. 아랍어라 하더라도 각 나라별 사투리가 있어 통역 전에 환자의 국적과 사투리를 미리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다. 중동에서는 한 명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단위 가족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평균 4명에서 많게는 10명의 가족들이 한국으로 온다. 한국 문화를 모르는 상황에서 요청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어 조율을 잘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랍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처음 한국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3분 진료’에 대해 많이 놀란다. 환자나 가족들은 담당의와 면담을 원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빨리빨리 진행되는 진료에 대해 미리 설명을 드리곤 한다. 예전에 여성 환자가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히잡을 쓰지 않고 입원실에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셔서 놀란 적이 있었다.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는 모습을 가족 외 남성에게 보이면 안 되는 문화가 있다. 지금은 아랍 환자가 많아져서 의사 선생님들도 노크를 먼저 하고 환자에게 히잡을 쓸 시간을 준다.”
“예민한 상태의 외국인 환자들과 함께 하며 스트레스도 받지만
오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보람된 직업”
-의료통역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적도 많을 것 같다.
“병원에서 환자를 대하는 직업이라 굉장히 고된 직업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오히려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를 도울 수 있는 감사한 직업이다. 저희 어머니와 동갑인 분이 암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환자 분이 처음 마주했을 때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 눈물을 글썽이며 첫 진료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분이 완치돼 마지막 항암 치료를 받고 나서 축하하는 종을 울릴 때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SNS로 안부를 주고받는데, 늘 아랍에미리트에 오면 꼭 자기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하신다. 이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친구가 생겼다.(웃음)”

-의료통역사의 직업 상 장단점을 꼽는다면.
“장점은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분야라는 점이다. 그리고 의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의학 지식이 쌓인다. 단점은 몸과 마음이 지쳐 예민한 상태에 있는 외국인 환자와 보호자를 응대하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다. 장점이자 단점을 꼽는다면 언어 외적으로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의료 상식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 등을 꼽을 수 있다.”

-의료통역사의 연봉은 어느 정도인가.
“개인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시간당 6만원 정도 받는다.”

-의료통역사의 비전은 어떨 것 같나.
“최근 원격 진료를 많이 하는 추세이고, 해외 환자들의 니즈도 많아 앞으로 의료통역사의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K-의료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긍정적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의료 통역을 열심히 하면서 유튜브, 기획 등 다른 분야에도 욕심이 있다. 영역을 넓혀가면서 새로운 분야를 접해 보고 싶다.”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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