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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명은 작업장 내에서 근무했지만, 원청 근로자와 업무 장소가 달랐다. 일부는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거나 정리했고, 또 다른 일부는 공장 내 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업무를 맡았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이 모두 전산시스템 등을 통해 원청의 지휘 및 감독을 받고 있고, 업무 역시 자동차 제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현대차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청업체가 협력사 직원에게 전산시스템을 통해 조립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고 파견법상 근로 지휘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청업체가 필요한 부품의 순서와 시간을 협력사에 전달하는 것은 정보 제공일 뿐 파견과는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부품공급망 내 정보를 공유했다고 원청이 직접 협력사 직원을 지휘했다고 본다면, 파견의 범위가 무한정 확대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경제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이 2010년 현대차 사내 협력사 근로자에 대해 불법 파견이라고 판단한 이후 대부분의 소송에서 원고(사내하청 근로자)가 승소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외 전자, 철강, 건설, 서비스 등 업종과 무관하게 대부분의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 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파견과 사내하청의 가장 큰 차이는 원청의 업무 지시 여부다. 파견은 원청이 파견업체 근로자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할 수 있지만, 사내하도급은 그럴 수 없다.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하면 불법 파견이다. 한국의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은 경비와 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하기 때문에, 제조업체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때 사내하도급을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업무 지시 여부가 모호해 기업들이 패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기업들은 이번 판결이 사내 협력업체 활용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분석한다. 재판부는 “기업이 모든 공정과 업무를 자체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극히 비효율적”이라며 “기업이 협력업체와 분업 또는 도급을 통해 효율성 및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경제상 자유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사회적인 과제지만, 이 필요성이 파견 범위를 무한정 확장하는 결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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