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대선 후보는 물론이고 연관 인물들의 사적 대화 녹음이 잇달아 공개된 게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의 욕설이 담긴 통화녹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기자와의 통화 내용이 큰 화제를 모았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과 관련해서도 정영학 회계사,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 등 간에 오간 대화의 녹취록이 ‘스모킹건(결정적 단서)’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거센 사회적 파장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녹음 내용 유출의 배경에는 누구나 쉽게 대화를 녹음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자리잡고 있다. 자동으로 통화녹음이 되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스마트폰 가입자는 국내 시장의 80%(4000만 명 이상)를 차지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녹음된 내용을 자동으로 텍스트로 바꿔주는 STT(speech to text) 기술이 더해져 누구나 쉽게 녹취록을 작성할 수 있는 여건까지 마련됐다.
‘녹취의 일상화’는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에선 통화녹음이 “나를 보호할 최소한의 방어 도구”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편에선 “자유롭게 대화하기 어려운 불신의 시대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리적 문제를 배제한 채 법적 관점에서만 보면 통화녹음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녹음한 사람이 대화 참여자라면 상대방 의사와 상관없이 녹음해도 문제가 없다. 법적 증거로도 활용할 수 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녹취의 일상화는 한국이 ‘불신사회’가 돼 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신뢰가 무너지면서 나를 존중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지고 그 결과 대화를 녹음해 증거로 보전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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