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퇴사를 알리는 과정은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직원과 이를 알게 된 회사의 서운함이 어색한 기운을 자아낸다. 그렇더라도 둘은 모여 앉아 '불편한 동거'를 마무리하기 위한 퇴직 시기를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퇴사 시기가 제대로 조율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등 직장인 SNS에는 "인수인계하고 가라며 차일피일 퇴사 시기를 미루는 사장님" "인수인계 제대로 안하면 손해배상 청구한다는 회사" 등에 대한 고민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A사는 광고대행업체다. 이 회사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성형외과 병원 광고를 대행하고 매출이 발생하면 일정 비율의 금액을 광고 금으로 지급 받아 왔다.
근로자 B는 2020년 1월 A사와 3개월 계약직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월급은 자신이 이룬 매출액의 3%로 정했다. 이후 앱을 통해 병원 광고업무, 고객 전화 상담 및 컴플레인 관련 업무까지 담당하게 됐다.
3개월이 지난 4월부터는 정식 근로계약을 맺게 됐지만, 9월 말경 B는 돌연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당일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이에 A사는 B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사는 "업무 특성상 거래처 홍보를 하던 직원이 퇴사하면 신규 채용 및 업무인수인계에 적어도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그런데도 퇴사를 통보하고 다음 날 즉시 퇴사했고 최소한의 인수인계도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근로계약 성실의무를 위배해 고의로 손해배상을 가했다"라며 "무단 퇴사로 퇴사 이후 월 매출액이 감소했으므로 5200만 원을 지급하라"라고 청구했다.
B가 재직할 때 월평균 매출액이 1억7000만 원이었는데 무단 퇴사 직후인 10월의 매출이 1억1700만 원으로 줄었으니 감소한 매출액을 배상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청구를 일축했다. 김상훈 판사는 "B가 재직하고 있을 때도 매출액 감소 폭이 증가하고 있었고, 퇴사 이후에는 감소 폭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라며 "이 점을 볼 때 매출액 차액이 A사의 손해라고 볼 수 없으며 매출액 감소가 B의 퇴사로 인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퇴사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문제다. 민법은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날부터 1개월이 경과해야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을 하고 있다. 다만 '기간'으로 보수를 정한 경우 상대방이 해지 통고를 받은 당기 후 1기를 경과함으로써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는 규정도 있다. 만약 2월 14일에 사직서를 던졌는데 우리 회사의 임금지급일이 매달 말이라면, 3월 말일에서야 해지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최악의 경우 최대 2개월 후에나 통보의 효과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다고 3월 말일까지 노동을 강제할 수는 없다. 근로기준법 7조에서는 강제근로, 즉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노동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근로자가 강제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30일 전에 퇴직 사실을 알리도록 사내 규정을 정한 회사도 많지만 이것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기간은 아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회사 취업규칙에서 한 달 전 퇴사 통보하고 인수인계하라고 정하고 있는데 이는 지켜야 할 의무인가"라는 질문에 "인수인계 없이 퇴직해도 노동법에 저촉되지는 않는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다만 회사 측에 퇴사 통보 직후 결근하면 아직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경우 무단결근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일의 급여와 퇴직금 등에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특히 법적·이론적으로는 근로자의 무단 퇴사로 회사에 피해가 생겼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앞서 사업주가 입은 손해를 입증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만약 정말 거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프로젝트에 그 사업의 성패를 좌지우지하는 필수 인력으로 스카우트가 된 경우처럼 무단 퇴사 시 회사에 미치는 손해가 분명하게 입증된다면 손해배상이 성립될 수 있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일반 근로자가 퇴사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종종 회사가 자신들이 정한 퇴직일을 지키지 않았다며 함부로 페널티 조로 임금을 차감하는 경우가 있다. 임금체불이 되거나 근로기준법상 퇴직일 내 14일에 임금을 지급하게 돼 있는 규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 반대로 근로자가 기간을 두고 퇴사를 통보했는데 보기 싫으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도 부당해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는 인수인계를 어느 정도로 처리해주면 될까. 한 달 정도 기간을 두고 회사에 통보하는 것이 적절하며, 인수인계 준비를 서면 등으로 해 놓았다면 후임자가 구해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미련 없이 떠나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법적인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어느 업계나 '바닥'은 좁다는 것이다. 평판과 신용을 확인하기 쉬운 세상인 만큼 회사와 근로자 모두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면 소탐대실할 수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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